우리가 모르는 그냥 사람들의 세계

<그냥, 사람>을 읽고

by 토끼와 핫도그
어떤 사람에게는 엘리베이터 버튼의 위치가 장소의 방문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버튼의 위치가 높으면 그곳에 갈 수 없다.


yes24에서 작가, 출판인, 기자, MD 50인이 뽑은 올해의 책을 공개했다. <그냥, 사람>은 목록에 올라 있는 여러 권의 책들 중 가장 많은 득표를 얻은 책이다. 책은 독자의 취향을 심하게 타므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책으로 뽑았다고 해서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될지 아닐지는 모를 일이다. 나에게 인생 책이 다른 사람에게 수면제가 되는 일이 허다하니까. 큰 기대 없이 책을 펼쳤다. ('펼쳤다'라고 하기엔 밀리의 서재로 읽었다. 이제 책도 '클릭했다'라는 서술어와 어울리는 시대가 왔다.)


<그냥 사람>은 저자인 홍은전씨가 한겨레에 5년 동안 기고한 칼럼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나는 칼럼이나 기고문을 모은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칼럼의 특성상 글이 쓰인 시대 상황을 다룰 수밖에 없고, 그런 글들은 시간이 지나면 생명력을 잃는다. 당시엔 반짝였던 글도 훗날 다시 보면 얼토당토 않은 소리일 때가 많다. 유명 작가가 썼든 아니든 칼럼 책을 흥미 있게 읽은 적이 드물다.


이 책은 내가 가진 편견을 깼다. 칼럼을 모은 책도 좋을 수 있다. 일반적인 책은 다 읽고 일주일이 지나면 내용을 대체로 까먹는 반면에 좋은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은 다음 내용을 자꾸 곱씹게 만든다. 끝내주는 책은 마지막 구절이 끝난 뒤에 마음 어딘가에 남아서 행동을 불러 일으킨다. <그냥, 사람>은 좋으면서 끝내주는 책이다. 머릿속에서 문장들이 떠다니고,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칼럼 말미에 쓰인 구독을, 연대를, 시청을 부탁한다는 말들이 내 마음에 씨앗을 심은 건가 싶다.


나는 장애인의 세계를 모른다. 비장애인으로 삼십년 넘게 살아왔고 가족 중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없다. 어쩌다 마주치는 장애가 있으신 분은 당연하지만 거동이 가능한 분들이다. 그러니 나에게 혼자서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게 불가능한 중증 장애인의 생활 모습은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 땃쥐의 서식지와 행동 습관 만큼이나 낯설고 멀다.


저자는 익숙치 않은 세계를 보여준다. 혼자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자립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세 가지 정도 있다. 운 좋게 돌봐줄 가족이 있으면 다행이다. 가족이 챙긴다면 익숙하고 편한 집에 머무를 수 있다. 비장애인 만큼이나 장애인들도 집이 편하고 좋다. 물론 돌봄을 감당해야 할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다른 선택지는 활동 보조인을 고용하는 거다. 집에서 보조인을 쓰면 한달에 50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일반 가정이라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지만 장애 등급에 따라 차등 지원된다. 보조금도 고정되어 있는게 아니라 정책에 따라 달라져서 하루에 8시간 보조인을 쓸 수 있다가 갑자기 4시간만 쓸 수 있는 금액이 지원되기도 한다. 장애인의 생활 시계에서 4시간 사라진 건 아닐텐데 말이다.


남아있는 가능성은 중증 장애인들이 가는 시설이다. 시설에서는 입소한 사람에게 침대 밖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직원이 하루에 몇 번 몸을 움직여 줄 때나 밥 먹을 때 빼놓고는 침대에 미동도 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 정신이 살아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감옥에 갇혀서 지내는 것과 매한가지다. 시설은 인권과는 거리가 멀어서 탈 시설 운동을 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런 삶이 있다는 걸 누군가 알려준 적이 없으므로 몰랐다는 말을 하기엔 부끄럽다.


중증 장애인이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병상이 있으면 병원으로 가면 되지만 병상이 부족해서 집에서 격리된 채 대증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움직일 수 없으니 혼자서는 밥도 못먹고 대소변을 볼 수도 없다. 나를 비롯한 비장애인의 상상력은 중증 장애인이 코로나에 감염될 경우에 닿지 못한다. 올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이런 일이 벌어졌다. 고심 끝에 지역 활동가들이 조를 정해서 24시간 동안 코로나에 걸린 중증 장애인분을 돌봤다.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그분은 코로나가 아니라 다른 문제로 잘못되셨을 거다.


책에는 정의당 장혜원 국회의원의 이야기도 나온다. 동생이 중증 발달장애인인 장의원은 초등학교 때까지 동생을 돌봤다. 자신이 중학교에 가면서 동생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자 동생이 시설로 들어간 걸 알게 된다. 이후에 다시 동생을 데려와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트위터에 올렸었다. 장의원은 엊그제 장애인 활동 지원법의 일부개정안을 통과 시키고 무척 기뻐했다.




교양을 넓히고 높이는 책이 유행이다. 교양의 뜻을 검색해 보면.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교양을 높이기 위해 넓고 얕은 지식이 쓰여 있는 책을 읽고, 교양 있는 영상물을 보며, 클래식을 듣고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 모르던 사실을 알면 내 교양이 조금 높아졌나 우쭐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진짜 교양은 모르는 세계의 문을 열 때 넓어진다. <그냥, 사람> 안에는 중증 장애인, 평택 미군기지, 세월호, 탈 시설, 용산 참사, 동물권 등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알지 못하는 세상을 발견하며 교양이 넓어지는 걸 느낀다. 느낌으로만 끝나지 않게 마음에 남은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잘 가꿔야겠다. 좋으면서 끝내주는 책을 읽었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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