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4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참 잘 웃는다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어둠, 우울, 슬픔 따위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사소한 유머에도 웃고 심지어 화가 나도 웃는다. 어이가 없어서 웃는 것은 물론 가장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웃을 수 있다. 어딘가 이상하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잘 웃는 사람이라는 건 좋은 거다. 그렇지만 화가 나도, 기분이 상해도, 불편해도 웃는다는 것은 나의 진짜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다. '나는 당신으로 인해 불편하고 당신이 하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이것을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사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가 보고 자라온 화, 분노는 부모님으로부터 비롯됐다. 자신이 기분이 나쁘면 무조건 소리부터 질러버리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보고 자신의 화를 꾹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기분을 우선 시 하고 나의 기분은 항상 아래에 있도록 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이것은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갈등과 싸움을 회피하고, 상대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가 나의 기저에 깔린 진짜 속마음이다.
이러다 보니 나는 평소 생활에서는 화를 억누르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비상식적인 포인트에서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회사 생활에서 성추행을 당하거나 직급이 낮은 직원이 얼토당토 안 한 말을 나에게 했을 때 당당히 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퇴근 후 엄한 편의점 직원이나 식당 아주머니에게 미친 듯이 화를 냈다. 나보다 약한 사람, 나를 싫어해도 상관없는 사람을 골라서 화를 낸 것이다. 정말 비열한 인간이지 않은가. 타인에게 거절당하고 버려진다는 것에 두려움은 세상 한가득 끌어안고, 정작 화를 내야 할 순간에는 화를 내지 못한다. 아니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한다. 대화를 시작하자고 하면 크게 화를 내고 인연을 끊는다.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건넨 한 마디(장난 혹은 정말로 가시 돋은 말일지라도)는 여러 생각의 가지로 뻗어나가 '아 나를 싫어하는구나'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고 있구나' '아 역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구나'로 진화한다. 이 과정을 자신을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보자. 과도하다. 지나치게 자기 비하와 어처구니가 없는 합리화며, 쓸모없는 감정소비다. 이렇게 차분히 돌아보면 전혀 화를 낼 일이 아니었던 거다. 자신만의 일그러진 감정을 대입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세운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봐라. 그 사람의 문장을 봐라. 속 뜻을 만들어 의미를 생성하지 마라. 혹시나 의미가 보인다 하더라도 그건 나의 판단이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나의 일그러진 판단으로 결론이 날 테니 함부로 남의 생각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니깐 혼자 착각하고 자빠져 있지 말라는 거다.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자존감 부족으로 이어진다. 타인에 기대 나를 완성하려는 심리. 그 누구에게도 잘 보여야 하고, 그들은 나를 결코 싫어해서는 안 되는, 이 망할 놈의 애정 결핍. 난 타인으로부터 반드시 사랑을 받아야 안정을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다. 10명 중에 10명이 모두 다 나를 싫어해도 나는 상관이 없다는 거다. (물론 내가 피해를 주고 있다면 다른 상황이겠지만) 나에게는 내가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 누군가 나를 싫어해도 나에게는 내가 있기에 동요하지 않는다. 그래 마음껏 나를 싫어하고 비하해라. 나는 당신에 의해 낮아지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타인에 의해 성장이 결정되지 않는다. 나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자신을 끌어내고 하루하루를 성장한다. 그렇기에 (나를 비하하는) 타인은 나의 인생과 상관이 없다. 타인이 나를 칭찬하면 고마운 거고, 이유 없이 비난하면 무시하면 끝이다. 원래 내 성격이 다 신경 쓰는 사람이다라고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럼 그 성격을 고치면 된다.
아래에 고치는 방법을 좀 더 알아보자.
1. 언제 가장 화가 나는가?
상대방이 나를 무시할 때. 나의 존재를 없는 것처럼 행동할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거절할 것처럼 보일 때(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럼' 보인다는 거다)
2. 앞으로 화가 나고 대화가 힘든 상황이 올 때 어떻게 할 건가?
감정에 지배 당해 혼자 착각하는 것을 가장 멀리해야 한다. 남의 생각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되 나 자신의 중심을 잃지 말자. 그게 설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얽매이지 말라. 떠날 사람은 어차피 다 떠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미리 판단해서 울먹거리지 않아도.
-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을 때
친한 선배가 알려준 건데, 상대가 말한 어이없는 문장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끝을 올리라고 했다. 그렇게 세 번 말하라고 했다. 그럼 상대도 자신이 뱉은 말을 나로부터 다시 듣는 거라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곱씹어보게 될 거라고. 아니면, '지금 하신 말씀 상당히 기분이 나쁩니다.' 혹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를 가지고 한 말 같다면 '나는 너의 말이 ~~ 식으로 해석이 되는데, 내 착각이니? 조금 확실하게 말해줄래?'라고 차라리 분명한 의도를 확인하자. 이것은 상대가 그래도 가치 있을 때의 경우고, 아니면 정말 그냥 깨끗이 무시한다.
- 타인이 나를 무시할 때(부모님이 나를 인정하지 않을 때)
부모님은 나를 인정한다. 그저 만족도가 높아 나를 몰아붙였을 뿐, 나를 인정한다. 그들은 나의 현 상태를 인정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인정한다.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기대하지 말라.
3. 기타 노력 사항
-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화를 내거나 울지 않기
- 혼자 착각에 빠져 갇혀 있지 않기
- 에너지 분출구 마련하기 (운동)
- 의미 있는 활동 하기
오늘의 결론, 나는 내가 완성한다. 나는 내가 인정한다. 쓸데없는 착각으로 논리적인 척하지 말자. 논리와 합리화는 다르다. 순간적인 분노에 이성을 잃지 말자. 결국 후회한다.
- 2020년 6월 21일
너무너무 보고 싶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