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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Mar 17. 2022

입주 아파트 공동구매 박람회

양날의 칼

8년 전 청소업을 시작했을 때 제일 처음으로 예약을 받아 청소한 집이 새로 지은 아파트의 입주청소였다.

입주 현장에서 어떤 업체들이 어떤 행사를 하는지, 공동구매 박람회라는 것 자체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무렵에도, 입주를 앞둔 사람들은 어차피 청소를 꼭 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한 개씩 예약이 이루어지는 이사 청소현장 보다는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를 주력으로 홍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행히도 그때는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으로 계속해서 들어서고 있어서 신규 아파트 쪽에서  꾸준히 예약을 받을 수 있었다.


신규 아파트의 입주시기는 2달 정도 된다.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입주민들이 입주를 하고, 그 이후에 띄엄띄엄 나머지 세대의 입주가 이루어지고, 전세물량들이 조금씩 뒤를 잇는다.

이렇게 대형 아파트의 입주 시기가 끝나게 되면 한동안 예약이 뜸해지고 이사청소 위주로 하게 되는 시간이 오는데, 이렇게 개별적으로 들어오는 예약들은 손 없는 날을 앞두고 예약 건이 하루에 몰리기도 하고 예약이 아예 안 들어오는 날도 있기 때문에 업체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한집씩 청소해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마음먹는 대로 꾸준하게 일을 할 수는 없다.

이처럼 업체는 언제나 이 예약 물량에 대한 고민을 안고 갈 수밖에 없었다.


공동구매 박람회의 가장 큰 메리트는 한정된 기간이기는 하지만 이런 물량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입주를 앞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박람회다 보니 입주 2달 동안 꾸준히 일할수 있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물량 고민 없이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물량이 많은 만큼 수익으로 직결되니 매출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업체로서는 공동구매업체로 선정되는 것 자체가 고수익이 보장된 현장을 만나는 것과 같다.


입주민들 입장에서의 공동구매 박람회는 입주 시에 필요한 여러 품목 들을 시중가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개별적으로 알아보기 힘들었던 여러 품목들의 업체들을 선별해서 뽑아 놓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품을 들여 업체를 알아보는 수고를 덜어주고, A/S 또한 예비입주자 대표진들과의 협약내용에 포함되어 철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사후 서비스 또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이점들이 있다.


공동구매에 참여 업체들은 기본적인 시공능력과 합리적 가격, 철저한 A/S가 바탕이 되는 믿을만한 업체임을 증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증빙서류와 제안서를 통해 선발되기 때문에 신생업체는 참가하고 싶어도 자격미달이 되는 경우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공동구매 박람회에 참가하는 입주 품목으로는 전자제품, 가구, 중문, 커튼, 청소, 줄눈, 새집증후군, 탄성코트, 연마, 코팅, 음식물처리기, 안전방충망, 선반 등으로 품목별로 선별된 3~5개의 업체들이 한 장소에서 박람회를 개최하고 입주민을 위한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경품과 여러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렇게 박람회에 참가하게 되면 시중가보다 할인된 가격에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조금 있긴 하지만, 당장 상품이나 시공들을 구매해야 하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려있는 현장이기 때문에 업체들의 수익은 어마어마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구매에 참여하기 위해 예비입주자 대표진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거나 그 공동구매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사장님들과 인맥을 쌓으려는 사장님들이 굉장히 많다.


이런 공동구매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자격미달이라 나에게는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좀 더 실력을 쌓고 경력도 쌓이면 언젠가는 한번 도전해 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공동구매를 주관하시는 사장님으로부터 공동구매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의뢰가 들어왔다.

청소업체로는 공동구매에 참여할만한 실력을 가진 업체들이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고, 언제나 다른 품목보다 말이 많았던 청소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사장님이 입소문으로 우리 업체를 알게 되셨다고 하셨다.

업체를 시작한 지 1년 남짓된 우리 업체가 과연 공동구매 행사에서 유명한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참가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언제든 시작은 있으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것도 같고, 좀 더 큰 곳에서 부딪혀보자라는 마음으로 공동구매에 참가를 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사업자등록증상 운영한 지 3년 이상 된 업체들만 참가할 수 있지만, 이런 부분들도 주최하는 사장님의 인맥에 의해 조금씩 조절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만큼 주최하는 사장님에게 잘 보여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제대로 된 제안서조차 만들지 못했던 우리 업체는 우여곡절 끝에 공동구매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수많은 예약을 한꺼번에 받아 예약 걱정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는 핑크빛 미래만을 꿈꾸며 설렘을 가득 안고 박람회에 참가했다.


처음 참가했던 아파트는 그리 크지 않았던 규모의 아파트였기 때문에 박람회에서 예약 물량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입주가 가까워오면서 기존의 청소팀 2팀이 2달 동안 꼬박 청소할 수 있는 예약물량이 다 찼다.

이제 예약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현장에 가서 평소에 하던 대로 열심히 청소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신규 아파트 공동구매업체로서 감당해야 하는 양날의 칼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알아본 개별업체보다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선정한 공동구매 업체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요구한다. 가격 면에서도 무조건 경쟁력이 있어야 함과 동시에 시공도 타업체보다 공동구매업체가 훨씬 잘해야만 한다는 높은 기준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애매한 품목이 청소다.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한 품목들은 기술자가 아니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대부분의 고객들은 잘 모르고, 공산품들은 상품의 하자가 있으면 새것으로 교체하면 된다.

하지만 청소는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하나의 티끌까지 걸고넘어진다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청소 서비스다.


공동구매에 참가해본 경험이 없는 우리 업체로서는 그동안의 고객님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에 좀 당황했었다.

개별적으로 까다로운 고객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강도가 예전의 고객님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의 태도 속에는 '나한테 잘못 보이면 우리 아파트에서 일 못하는 수가 있어~'라는 태도가 깔려있었기 때문에 한 고객으로 보기보다는 아파트 전체의 물량으로 봐야 하는 업체의 부담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고객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두렵고, 혹시라도 우리 업체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입주자 공동 카페나 밴드에 올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원하는 바를 다 맞춰드렸다.


실제로 그런 몇몇의 고객들은 그것이 그들의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며 자기가 원하는 서비스를 조금이라도 못 받았다 생각하면 카페에 악의적인 글을 올리고 글을 내려주는 대신 뭘 해줄 것이냐며 합의(?)를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업체뿐만 아니라 다른 품목의 업체들도 시공비를 받지 못하는 업체들도 많고, 우리 업체 같은 경우도 작은 실수였지만 현금 300만 원을 내놓지 않으면 카페에 올릴 거라는 협박을 받은 적도 있었다.

통화는 늘 녹음 상태로 되어있어서 그대로 신고를 할 수도 있었지만, 업체는 언제나 을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늘어가는 건 참을성뿐이었던 것 같다.

신규 아파트 예비 입대위(예비입주자대표위원회)들은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고, 공동구매를 이끄는 업체들도 손에 꼽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어서 소문은 금방 퍼져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떠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을 상대로 큰 사고를 만들어낸 업체가 다른 아파트 현장에 공동구매를 참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인 것이다.


이런 제한적인 상황과 품목의 특이성으로 공동구매 현장에서  청소를 아무런 클레임 없이 조용하게 마무리하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일수밖에 없다.

첫 현장에서 매일매일 올라오는 카페의 글들을 관리하고 현장을 뛰어다니고 소소하게 발생되는 클레임들을 처리하느라 나는 거의 멘붕상태였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자 눈은 충혈되고 입술은 터지고 몸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쯤 되자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책임감 있게 하다 보니 그래도 이름이 알려져 후반 물량은 물밀듯 밀려들었지만, 돈보다 몸과 멘털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그 이후에는 예약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첫 공동구매 현장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 이제 공동구매 현장은 안 들어가야겠구나."라고.

그만큼 멘털이 붕괴되고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현장에서는 강도 높은 일까지 하려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파르타식으로 현장에서 부딪혀가면서 배우니 첫 현장에서 배운 점도 정말 많았다.


뜨거운 물도 목구멍만 지나면 금방 잊힌다고.

한 달이 지나고 새로운 공동구매 현장 제의가 왔을 때 다시 한번 홀린 듯이 승낙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괴로움은 서서히 잊히고 또다시 시작된 예약에 대한 부담감과 공동구매 현장에서 벌었던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이 그런 결정으로 이끌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가장 치열한 공간에서 매일매일 적지 않은 물량을 소화하고 하루하루를 이어나가다 보니 어떤 식으로 고객들을 대해야 하는지, A/S가 발생 안되게 하려면 어떤 식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고객에 대한 대처방법과, 하자가 발생했을 때 처리방법 등 다양한 부분에서 고민이 이루어졌고 어쨌든 현장에서 버티 내려면 적응해야 했고, 달라져야 했고, 성장해야 했기에 급진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치열한 시간이었지만 되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 업체는 점차 공동구매 현장에 익숙해지고, 조금씩 이름을 알려나가면서 계속해서 입주하는 대부분의 아파트에 공동구매업체로 참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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