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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May 30. 2022

나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인간관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거다.

우리 주변엔 온통 피해자만이 가득하고 가해자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은 '내가 상처를 받았으면 받았지 상처를 준 적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분명 관계에서는 두 명 이상이 존재하고, 한 사람이 피해자라면 분명 한 사람은 가해자여야 하는데 모두가 본인은 피해자라고 얘기한다.

가해자이지만 정당한 사유나 혹은 억울한 부분이 있어서 자신 또한 피해자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애초부터 상처받지 않고 100% 가해만 입히게 되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상대는 상처를 받았건 말건 내 입장에서는 스쳐가는 일상일 뿐이라 내가 가해자임을, 그런 상황이 벌어졌음을, 내가 어떤 상처를 가했는지조차 잊어버렸을지도.     



돌이켜보면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상처받았던 기억.

내가 나의 입장을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하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던 그 아주 초라하고 내면에 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아이가 떠오른다.

바로 어제 일처럼 생각만 해도 여전히 울화가 치밀고 그 힘없던 아이가 유난스레 안쓰럽게 느껴진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억울하게 당하기만 했던 기억들이 있다.

인간관계로부터 상처를 받고 정신을 못 차리며 직장에서의 슬럼프까지 겪었던 그때,

어딜 가도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결국,

세상이 달라지길 바랄게 아니라 내가 달라져야 되겠구나  


하고 깨달음이 왔던 적이 있다.

그리고는 너무 좋아했던 감성 문학, 소설, 에세이등은 멀리하고, 자기 계발서들 위주로 읽으며, 감성적이 되지 말고 차가운 여자가 되어보자고 수없이 되뇌었던 시절이 있었다.

달라져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타고난 성격의 쉽사리 바뀌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성격이 조금씩 바뀐 것도 사실이다.


어릴 때의 내 모습과 성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에게 휘둘렸던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보노라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대한 연민을 품고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기술교육학원에서는 2일 동안 마인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 중에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에 북한에서 탈북을 하고 우리나라에 왔던 분의 귀함 경험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여자분은 딸과 같이 중국으로 건너가 네팔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오는 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힘든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주셨다.

북한에 있을 당시에 남편과 딸, 세 식 구로 살고 있었는데 남자는 탈북하기가 더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탈북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딸과 함께 탈북을 계획했다고 했다.  

그분은 탈북을 하기 위해 나이를 10살 아래로 속이고 딸과 함께 자기 스스로를 팔아 중국 사람에게 시집을 가는 조건으로 중국으로 이동을 했다고 했다.

다행히 딸과 같은 동네에 머물며 중국에서 자신을 돈으로 샀던(?) 그 사람과 결혼했고, 딸 또한 시집을 가서 그곳에서 미용 기술도 배우고 미용실에서 일도 하며 지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브이에서 한국을 봤는데 티브이에서 보이는 한국의 모습은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잘 살고 좋아 보이는 나라로 보였고 그때부터 '언젠가는 꼭 저곳으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에게 지원도 많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딸과 함께 한국을 한번 가 보자 하고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남편의 돈을 조금씩 빼돌려 그 돈으로 중개인에게 당시 한화로 몇백만 원의 돈을 지불하고 네팔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원래 입담이 있으셨고, 성격도 거침이 없는 스타일이셔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굉장히 생동감 있게 재밌게 들었는데...

마지막에 의문이 남았다.


그러면 북한에 혼자 남겨졌던 그 남편분은 걱정이 되지 않는 건지, 사랑이 전혀 없었던 관계인 건지, 그리고 중국에 넘어와서 또 새로운 남편이 생겼는데 그분이 참 착한 분이셨고, 잘해줘서 고마웠다 말씀하셨는데 그분을 떠날 때의 미련이나 미안함이라든지 이별슬픔. 이런 건 전혀 없었는지라고 물어봤더니 그분은 갑자기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다는 듯 당황하셨다.

그리고는 산사람은 살아야 되니까 그 사람들도 알아서 잘 살고 있겠지요. 하고 대수롭지 않은듯 웃어넘기셨다.


 분은 속된 말로,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고 배신의 상처를 남기면서 자신의 삶을 지켜내 온 분이셨다.  

같이 살았던 배우자에 대한  죄책감이나 일 말의 미안함마저 전혀 없는듯했고, 아예 그런 식으로는(자신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 생각해 본 적도 없다는 듯이 당황하시길래 오히려 내가 더 놀랬던 기억이 난다.

난 지금 현재 그분이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은 떠나온 그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안함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던 과거에 상처받았던 기억으로 늘 스스로를 조금 안쓰럽다 생각했던 나는 늘 피해만 받았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내가 상대방에게 행하는 '냉정함'에는 그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그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었음에, 나는 내가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릴 때는 아무 말도 못 하는 어리석고 자존감 낮아 피해만 보는 아이 었지만, 성격을 고치고자 마음먹은 이후로는 조금은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라는 만족감에 도취되어 있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탈북을 하고 어렵게 한국으로 와서 새 삶을 시작하려는 이 분 또한 죄책감과 그리움보다는 나 자신이 그 어려운 역경을 견뎌내고 한국에 도착했다는 그 성취감에 도취되어, 내가 살려고 그랬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아?라고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당당한 태도만을 보이셨다.



할리우드 배우 모건 프리만의 유명한 말.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쓰레기인지를 구분하려면
처음 만났을 때 친절하게 대해 주어라.
좋은 사람들은 훗날 어떤 식으로든지 보답을 하려 할 것이고,
쓰레기들은 슬슬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내가 상처받았다고, 내가 살기 힘들었다고 엄한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말고 좋은 사람에겐 친절하게, 쓰레기들에게는 단호하게.

내면을 지키면서 늘 나의 태도를 검열해보는 자세로, 강약을 조절하는 유연함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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