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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Jun 01. 2023

출간

찰나의 행복과 오랜 고뇌의 시작

퇴고랄 것도 없는 퇴고를 마친 후 드디어 인쇄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드디어 이 원고가 책이라는 물성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설렘과 기쁨에 압도되어 지냈던, 참 순수(?)했던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하지만 비록 찰나였다 할지라도, 순수했기에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순도 100%의 행복이었으니 돌이켜보면 감사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몰랐기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랐고, 몰랐기에 서운하지도 않았고, 몰랐기에 설레고 행복하기만 했던 시간들.


그로부터 얼마 후 책이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필요한 부수(저자증정본 10부 이외에 필요한 부수는 정가의 70%로 구매가능)를 말씀드리고 며칠 후에 최종완성된(드디어!!!) 책을 받아보았다.

택배를 받고 상자를 뜯었다.

표지는 편집부와 회의를 통해 결정되었기 때문에 어떤 디자인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박스를 열어보고 그 속에 소담스럽게 쌓여있는 샛노랑 표지들을 처음으로 마주했던 느낌은 뭐라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가슴벅찬 감동이었다.

그리고 첫 장을 펼치고, 나는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탄성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염두에 두자.)


책이 '흑백'이었다.

청소 관련 책이니 만큼 현장의 사진들이 많았고, 글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사진을 여러 개 삽입했다.

좀 더 실감 나는 청소현장을 반영하고, 학원내부의 사진들을 좀 더 선명하고 깨끗한 화질로 인쇄하기 위해 제일 좋은 사진으로 여러 번 고르고 고르는 작업을 거쳤었는데, 흑백사진이라니...


아......

이미 책은 완전히 인쇄된 이후였다.

출판사의 그 누구도 나에게 사진이 흑백으로 인쇄될 거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에 순간 멘붕상태가 되었다.

Before와 After가 확실해야 할 청소사진들이 흑백으로 나와있으니 어떤 오염이 어떻게 깨끗하게 바뀌었는지 거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렇게 흑백으로 실을 사진이었다면 오히려 사진을 싣지 않는 편이 더 나았던 건 아닌가.

'참 성의 없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출판사의 처사에 눈물까지 핑 돌았다.


이로 인해 편집의 과정 중에 쌓여왔던 나의 서운함은 폭발직전에 이르렀다.

이것을 누구에게 하소연할 것이며, 모든 책이 인쇄된 마당에 모두 회수해 달라 요구할 수도 없고.

이럴 거면 왜 화질이 좋은 사진을 골라달라 요청했던가!

무엇보다 그 누구도 내게 책이 흑백으로 인쇄될 거란 얘기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제일 분노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의문도 생겼다.

분명 좋은 책을 만들어 많이 팔리면 출판사의 입장에서도 좋을 텐데...

분명 그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다른 책들은 컬러인쇄책들도 많은데 왜 하필 나의 책만 흑백에, 지면도 매끄럽지 않은 거 친소재의 종이에 인쇄를 했어야만 했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서운함이 차올랐다.

하지만 이제 막 책이 출간되고 홍보를 앞둔 시점이라 섣불리 나의 서운함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눌러왔던 서운함과 아쉬운 감정을 한번 터뜨려야 하나'와 앞으로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에서 괜히 밑 보이는 행동으로 출판사에 악감정만 심어주어 내 책을 더욱 신경 써주지 않으면 어쩌나'의 고민사이에서 참 힘들었다.

이즈음 되니 계약서에 있는 '갑'(저자)이 진짜 갑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따끈따끈한 첫 책을 손에 들고 감동과 행복감에 젖어야 할 시기에 책을 마주하자마자 온갖 스트레스만 겹겹이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참고 쌓아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또 다른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메인 편집자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흑백으로 인쇄되는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지 않았냐. 만약 출간비가 빠듯했다면 나는 내 사비라도 보태서라도 컬러로 인쇄해 달라 했을 거다.라고 했더니,

분명히 예전에 "2도로 인쇄될 거다'라고 하고 얘기를 했다 하신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었다. 출간을 목전에 두고 편집자분과 통화할 때마다 잘 알지 못하는 출판 관련 용어들에 긴장하며 통화를 해서 내가 놓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2도가 흑백이고 4도가 컬러인지 어떻게 아냐고!!!

'당연히' 컬러로 인쇄될 거라 생각했던 나의 당연함이 그들에겐 당연함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당연하게 밟아야 할 수순이라고 생각했던 홍보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도 이제 그 '당연함'을 요구해서안 되는 건가.

어쩌면 인쇄보다 더더욱 중요한 홍보를 앞두고 나는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엎어진 물.

불순물이 섞인 출간까지의 과정에서의 서운함과 원망은 뒤로하고, 앞으로 홍보일정은 어찌 되냐고 물으려는 찰나, 편집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어쨌든 작가님, 앞으로 홍보 잘 부탁드립니다.


순간 나는 못 들어야 할 것을 들은 것처럼 당황했다.

편집과정에서의 서운함은 차치하고, 출판사가 처음 계약당시부터 강조해 왔던 홍보에 대해서 만큼은 많은 신경을 써줄 것이라 생각하며, 홍보라는 거대하고 큰 강 앞에서 함께 노 저으며 배를 부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분명 투고할 당시와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도 잡지와 매체의 인터뷰며, 유튜브출연, 강연, 매체의 홍보들이 있을 거라 얘기했었는데, 홍보일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지금 나한테 홍보를 잘 부탁드린다니??

물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홍보들을 해봐야겠다 생각은 했었지만.

'홍보 잘 부탁드려요.' 이 말은 내가 출판사에 해야 할 말이 아닌가?라는 생각과 온갖 당황스러운 감정들로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져 되물었다.


"제 책에 대한 홍보를 제가 하는 건가요?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홍보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 지난번에 말씀드린 건은 "상황에 따라"변동될 수 있고요. 저희도 최대한 홍보계획을 잡아볼 건데 작가님도 작가님이 활동하시는 플랫폼이나 지인분들에게 최대한 홍보 부탁드립니다."


왠지 슬픈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아... 홍보도 나 혼자 해야 할 수도 있겠구나...


그 이야기가 있은 후, 1년이 지난 지금,

'출판사가 뒤늦게라도 나의 책에 애정을 가지고 홍보를 위해서 힘껏 애써주었다'라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림이 없다. 나는 이후에도 출판사로부터 홍보혜택을 받은 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인플루언서를 통해 서평단 모집을 하기 위해 섭외부터 비용까지 내가 다 지불하고 책 몇 권 지원해 달라한 것도 안 해준다 해서 실랑이를 벌일 정도였으니...


결론적으로,

내게 있어 출판사의 역할은 그저 책을 만들어 인쇄해 주고 전국 유통망에 깔아준 곳.

으로 정의될 수 있을 듯하다.



어떤 출판사를 만나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결국은 나의 책이다.

출판사가 알아서 해주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있었다가는 나와 같은 곤란하고 서운하고 아쉬운 결과물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무것고 모르는 상황에서 얼마큼 더 꼼꼼히 세세한 부분까지 챙길 수 있었을까마는, 어도 아주 작은 부분까지 하나하나 챙기는 수고로움은 가져야 할 것 같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내 책이니까.

최대한 긍정적으로 그 시간들을 의미 있게 해석해 보자면, 출판사가 너무 잘 알아서 일을 맘에 쏙 들게 해 줬다면 원래 그런거구나 하며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런 경험으로하여금 훗날 새로운 책을 낼 때 꼼꼼히 살펴야 할 새로운 경험치가 되어주긴 했던 것 같다.



다음 글에서는 혼자서 그나마 책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분투했던 소소하지만 조금은 유용했던 홍보팁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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