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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연구소 잠시 Jun 03. 2023

계약서 좀 보내주세요, 계약금 좀 보내주세요...

'계약서 날인', '계약금 입금'처럼 저자로 데뷔한다는 기쁨과 설렘을 증폭시켜주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게 첫 저자 데뷔를 앞두고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만큼 설레고 자랑하고 싶고 누릴만한 시간이 있을까?


아쉽게도, 내게는 그런 순간이 늘 기쁘게 주어지지만은 않았다. 엄청난 갈등 끝에 선택한 출판사와의 출간 의사를 알리니 기뻐해 주셨다. 친절한 담당PD님의 안도해주시는(?)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분량 조절이 필요했고, 그게 이루어지고 난 뒤에 계약서를 보내준다고 하신다. 기한에 맞춰 원고 분량을 조절해 보내면서도 혹시나 계약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까 불안했다. 원고를 보내고 나면 받아보시고 원고 분량이 확인되자마자 계약서가 날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출판사는 엄청나게 바쁘다고 하던데, 상상 이상으로인지 계약서 송부를 몇 번 요청하고서 받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계약서에 서명을 하여 되돌려보내면, 바로 또 입금이 될 줄 알았다. 계약서를 돌려보낸 것이 5월 10일. 계약급 10만원이 언제 찍히나, 그것이 들어오면 나 자신에게 아주 의미 있는 선물을 할지, 남편과 함께 쓰는 통장에 ‘계약금’이라고 명시해 보내며 함께 기념할지,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것이 되도록 또 내가 요청해서가 아닌, 출판사 측에서 먼저,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기억하여, 챙겨서, 입금되었으면 했다. 그 기쁨을 그렇게 예상했으나 예상치 못했다는 듯,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는 듯 받으며 놀라고 설렜으면 했다. 그런데 이 일 또한 아무리 기다려도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돈 이야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그것도 고작 10만원에 불과한 돈을 받아보겠다고 먼저 말을 꺼낸다는 게 나는 좀 창피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건 그걸 꼭, 출간 전에 받고 싶다는 일종의 내가 정한 기준이었다. 그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존중받고, 환영받고, 약속받는 그런 기분이 필요했다. 내가 자꾸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우리의 일을 위해 필요한 일들이 으레껏 일어난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그렇게 기다리다 7월이 되어 담당 PD님께 여쭤보았다. 계약금이 언제 입금되는지. PD님께서 오늘 중으로 입금되도록 하겠다고 해주신 걸 보아 잊고 있었던 걸로 추측되었다. 기존 일정대로 진행하다보니 그런 게 아니라, 말하자마자 입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니. 그리고... 8월이 되어 나는 다시 구차하게 묻는다. 그 계약금 10만원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나의 ‘의미’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렇게. ‘북토크할 때 낄 렌즈는 꼭 계약금으로 사고 싶다는 저만의 소망이 있어서요!’. 음. 다른 분들은 이런 부분을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도 당연스럽게 요청하는 사람이 못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 와 든다. 그리고 이것은 머리를 조아리거나 어깨를 구부리거나 하며 요청할 사항이 아니라 이런 것도 먼저 말하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상대에게 불편감과 불신을 표현했어도 될만한 상황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글의 큰 제목이 무엇인가, ‘초보작가 살아남기’ 아닌가. 나는 초보작가, 아니, 그 초보작가도 되기 전, 오직 이 출판사로부터만 ‘작가님’으로 불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것마저도 황송했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 불러주는 곳을 잃을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을 다시 겪기도 싫었다. 계약금은 곧 입금되었다. 출간된 지 한 달이 넘게 지난 뒤였다.


계약금 입금! 하고 SNS나 주변에 자랑도 해 보고 작가가 될 날을 설레며 기다릴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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