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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Sep 02. 2024

엄마의 기도

처음 암진단을 받고 암밍아웃을 할 때 가장 어려운 대상이 엄마였다.

가끔씩 참척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때.

(특히 박완서 작가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가 떠오른다.)

그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질량이 두려워서 우리 아이들을 대입시켜 생각하는 건 차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런 고통을 지척에 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예전 글에도 적었지만 특히나 우리 엄마는 감정형 F의 화신 같은 분이신데...

자식의 아픔을 두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지켜봐야만 하는 어미의 통렬한 사무침을 모든 엄마들은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을 우리 엄마도 버텨내는 중이다.



엄마에게 암밍아웃을 한 이후로 엄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신다.

매일매일 나의 안위를 물으시고 조금만 힘이 없어도 안절부절못하신다.

"엄마 아픈 게 당연한 거야.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밥도 못 먹고 구토하고 아무것도 못한다는데 나는 괜찮아. 진통제 한 알 먹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아."

일희일비하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부담스럽기도 해서 말은 이렇게 하지만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번주는 컨디션이 너무 좋아 큰언니와 엄마와 절에 다녀왔다.

아직 무더운 날씨였지만 숲 속의 청량한 기운과 맑은 물소리에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입구에서 2만 원짜리 초를 하나 구입하고 건강이 써져 있는 건 뭐든지 손에 쥐고 보는 엄마에게

"엄마, 이런 거 없어도 괜찮아. 초 제일 좋은 걸로 골랐잖아. 우리 사람의 불안함을 이용한 상업행위에 너무 보태주지 말자. 나는 초하나면 충분해."

라고 얘기한다.

심장이 좋지 않아 짧은 거리이동에도 숨차하던 엄마가 건강을 관할할다는 부처님을 모신 꼭대기법당까지 열심히도 올라간다.

늘 무교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나는 부처님이고 하나님이고 그냥 엄마를 봐서라도 무조건 나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법당에 들어서서 절을 한차례 올린 뒤 문밖으로 보이는 멋진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데 덥고 습한 기운에 자꾸 모기와 파리들이 귓전에서 왱왱거리기 시작한다.

손으로 쫓고 손수건을 흔들어 쫓고 짜증을 내고 있자니 옆에서 미동도 없이 염주알을 굴리며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턱밑으로는 땀방울이 떨어지고 날파리가 날아다녀도 엄마는 부처님처럼 고요할 뿐이다.

숙연한 마음이 들어 그 옆에서 엄마를 향해 열심히 부채질을 했다.

차마 언제까지 기도할 건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30분가량의 기도가 끝나고 엄마가 일어섰다.

엄마의 고요한 기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꾸 울컥울컥 속에 이상한 것이 올라온다.

'이런 엄마를 위해서라도 나 진짜 꼭 살아야겠구나.

부처님 저희 엄마 봐서라도 저 좀 꼭 살려주세요.'

잠시 흩날린 비로 공기는 한층 더 깨끗하고 상쾌해져서 우리는 개운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집에 가는 길에 추어탕집에 들러 맛있게 한 그릇씩 먹었다.

두어 달 소화가 안 돼 죽 한 그릇도 못 비우던 내가 맛있다며 추어탕 한 그릇을 뚝딱 비우자 엄마는 또 너무 좋아하신다.

'더 씩씩해져야지. 꼭 건강해져야지'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꿈이 좋다면서, 우리 주혜는 꼭 씻은 듯이 나을 거라 돌아오던 내내  얘기하던 엄마. 



그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나 보다.

며칠 후 작은언니와 점집에 가보겠단다.

평소에 미신을 유독 싫어하는 나를 설득해서 부적을 가져오면 집안 곳곳에 붙이라고 큰 언니를 설득했나 보다.

'아 역시 우리 엄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화하면 또 얘기가 끊어질 것 같아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엄마,

언니한테 얘기 들었어.

작은언니랑 엄마랑 점집 가겠다고…

처음 순간엔 엄마 마음 편할 거면 그것도 괜찮다 생각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

엄마.

부적이나 굿이나 이런 걸로 사람 살릴 수 있으면 용한 무당들 지인들은 안 죽는 거야? 그건 아니잖아.

그 사람들 신빨 떨어지면 눈치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한테 엄마 눈에 어려있는 절실함이 안보일 것 같나.

아마 법당 들어서는 순간부터 호구들 들어오는구나~~ 할 거다.

엄마 그거 절대 못 숨겨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 죽는다 하면 어떡할 건데.

수백 수천만 원짜리 굿 하자하면 어떡할 건데.

그리고 그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점칠 만큼 용하다고 누가 장담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안 믿어.


나는 그냥 나를 믿고, 엄마의 믿음을 믿어 엄마.

괜한데 마음 쓰지 말고 돈 쓰지 마세요.

아니면 항암 부작용 없이 안 아프게 해달라고?

지금도 나는 충분히 감사하고,

순리에 어긋하게 하는 것도 아니라 생각해

아프면 아픈 만큼 다 감내하고 이겨내고 버텨내야

하늘도 감동해서 얘는 살려줘야겠구나 안 하겠나.

꼼수 써서 잡신 불러서 부적 쓰고 굿하고 하면

내가 생명을 관장하는 신이라면 살짝 미워 보이겠다.

자기 혼자 편하게 살라고 저러나 싶어서.


아픈 게 당연한 거야 엄마

난 충분히 아플 거고 다 버텨낼 거야.

그 과정에서 언니들이랑 용성이랑 엄마의 간절한 기도가

그 무엇보다 하늘을 감동시킬 거라 생각하고.

나의 굳건한 마음가짐에도 그것만큼 효력 있는 게 없어.

나는 부적 그런 거 하나도 안 믿는다.


나는 그 무엇보다 엄마의 간절한 믿음이

이상한 이름 모를 무당들보다 훨씬 더 효험이 있을 거라 믿어.

그리고 다른 이상한 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의 믿음만 믿자!


나는 반드시 회복할 거고, 엄마랑 맛난 거 많이 먹으러 다니고

좋은데도 다 놀러 다닐 거니까.

엄마 언제나 그랬듯 셋째 딸 믿어봐라~

아픈 것도 그 어떤 것도 씩씩하게 잘 견뎌내고 보란 듯이 씻은 듯 나을 테니까!!

알았지?

엄마의 한없는 사랑에 항상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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