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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Sep 19. 2024

항암치료가 그렇게 두려운 건가요?-2

지난 글에 적었었지만 병원에서 암진단과 함께 여명이 6개월 정도라는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게 항암치료는 가보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자, 그곳에 발을 들이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고통과 두려움의 영역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겪어보니 아니다.

물론 앞으로 험난한 시간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1년, 한 달, 아니 하루라도 더 늘릴 수 있다면 나의 안위보다는 일단은 부딪히고 겪어봐야 하지 않을까.

또 항암을 하지 않는다 해서 아프지 말란 법도 없고.

어떤 선택이 내게 더 편안함을 줄지는 겪지 않고서는 모르지만.

이왕이면 후회 없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재수 없으면 걸리는 게 암이라지만 그 암이란 것과 단 한 번도 싸워보지 않은 채 굴복당하고 싶지는 않다.

아픈 게 당연한 수순이라면, 까짓 거 아프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


'메멘토모리'라고 그렇게 외쳐도...

어차피 사람들은 눈앞에 닥치지 않으면 모두가 나에겐 해당이 안 되는 일인 양 살아간다.

하지만 진짜 죽음이 눈앞에 다가와 있으면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얼마나 절실하고 감사하지를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그렇다.

머리카락이 뭐에 그리 대수며, 수시로 올라오는 구역질이 대수인가 싶다.


처음에 위로와 격려를 함께 해주며 항암치료가 많이 힘들 거라던 말들.

속이 매스꺼워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고 입은 구내염으로 뒤덮여 침도 삼키기 힘들고 그로 인해 입맛도 떨어지고 먹지 못해서 몸무게도 엄청 빠질 것이고, 머리카락이 다 빠질 거니까 가발을 준비해 놓으라는... 등등의 두려움만 가득한 말들.

실은 그래서 더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식하면 용감할 수나 있었을 텐데 어쭙잖게 알고 있으니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될까 너무 두려웠다.



살이 좀 빠졌다.

하지만 덩치가 있는 편이라, 이참에 다이어트를 하게 되는 건가 내심 기대를 했는데 요즘 또 너무 잘 먹어서 다시 2킬로가 쪘다.

매스껍긴 하지만 구토방지제를 먹으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입덧 비슷한 느낌이 계속 지속되다가 뭔가를 먹으면 진정된다.

식욕이 없어지냐... 나 같은 경우에는 처음 매회차 처음 주사를 맞을 때에만 2,3일 정도 식욕이 떨어지고 매스꺼움이 심한데 그 이후로는 아무렇지도 않다.

먹고 싶은 건 늘 있고 오히려 아파서 병원에 가서 암진단을 받을 때는 소화가 안 돼서 2달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지금은 뭘 먹어도 소화도 잘돼서 한 그릇은 뚝딱 비워낸다.

때때로 두통이 올 때도 있고, 열이 조금 날 때도 있지만 거의 일상생활을 해도 무방할 만큼, 오히려 진단받기 전보다 컨디션은 더 좋다.


담도암 항암주사는 탈모부작용이 올 확률은 1% 미만이라는데 나는 탈모가 왔다.

남편이랑 웃으면서 얘기했다.

"내가 그 어려운 1% 안에 들었네. 5년 생존율 2% 안에도 들 수 있겠다"라고.

머리 감을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5번만 머리 더 감으면 대머리 되겠네~' 생각하게 된다.

추석 전에 미용실을 가려했으나 어른들이 내 머리를 보고 심란해하실까 봐 조금 참아본다.

명절이 지나면 가발을 맞추고 계속 빠지는 머리카락에 의기소침해지기 전에 머리를 밀어버릴 생각이다.

상황에 지배당하기 전에 나의 선택으로 하는 거니까 좀 쿨하고 좋지 아니한가~

혼자 생각하면서.

한 번 쓸어내릴 때 빠지는 머리카락

정리해 보자면,

약간의 매스꺼움 - 애를 셋이나 낳아 키워서 입덧은 익숙하다.

두통 - 가끔씩 찾아오는 두통을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한 말씀하신다.

"진통제 드세요~" 그래서 진통제 먹었더니 말끔히 사라진다.

38도 미만의 열 - 해열제 먹어서 내려가면 된다.

탈모 - 빠지는 머리에 연연하지 않고 예쁜 가발 사서 쓰면 된다.


결국 나는 그 무섭고 독하다는 담도암항암치료를 진행하면서 너무 잘 지내고 있다.

항암약이란 것이 누군가에겐 잘 듣고 누군가에게는 부작용만 어마어마하게 남기고 효과도 없을 수 있단다.

그래서 2개월마다 CT를 통해 항암제가 잘 듣는지 확인하는 거다.

잘 맞는 항암제도 오래 맞다 보면 내성이 생기니까 그럴 경우 다른 항암제로 대체하고, 또 2개월마다 찍는 CT결과를 보고 효과가 미미하면 다른 항암제로 대체한다.

항암제의 종류도 엄청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각 항암제에 따른 부작용도 다양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항암제가 다른 누군가에겐 최고의 항암제가 될 수 있다.

부작용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죽어도 항암치료는 못 받겠다며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그럭저럭 잘 버텨내면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들도 많다.


또 누군가는 걱정하면서 얘기했다.

회차가 쌓이면서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근데 또 다른 이는 첫 항암이 제일 힘들었고 가면 갈수록 괜찮다 한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말 다 믿지 않기로 했다.

내가 직접 부딪혀보고 경험해 보는 수밖에.

남들은 너무 힘들었을지라도 나는 그럭저럭 할만할지 누가 아는가.



갑자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말한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떠오른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참 멋져 보이던데....

지금 생각해 보면 겉멋만 가득 든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된다.

혹시라도 미디어나 주변 암환자를 보고 '나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항암환자에게 항암치료는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의지이자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나의 안위만을 위해 두려움에 떨며 시작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 병원에서 생존기간이 6개월, 1년으로 보인다 해도 나에게 잘 맞는 항암약을 만나고 잘 버티다가 신약개발로 완치가 된 사례들도 참 많다.


암진단을 받으며 삶의 허망함도 느꼈지만 그만큼 삶의 소중함도 통렬히 느끼는 요즘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할 그 고통을 생각한다면 나의 육체의 고통쯤이야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

순리에 맞게 아프고 열심히 암과 싸워서 꼭 이겨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견디고 버티고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항암치료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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