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하지 마세요

by 송창록

신입사원 채용 인터뷰를 들어가면, 어지간하면 반도체 회사 다니지 말라고 먼저 충고합니다. 욕망과 현실이 엄청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려줍니다.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한때 반도체 회사에서 제조 엔지니어를 한다는 것은 이런 삶이었습니다.


“애인이 있으면, 3개월 내에 결혼해야 합니다.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은 헤어집니다. 헤어지고 나서 다시 애인이 생기려면 한참 걸리고, 시기를 놓치면 일만 해야 하기 때문에 솔로를 면하기 힘들 겁니다. 지금 애인이 없으면 영원히 없으니, 회사 안에서 짝을 찾으세요. 같은 업이 아니면 생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맞선을 봐도 다시 만날 시간이 없을 겁니다.”


쉬운 일이 없어집니다. 몸 쓰는 것은 예전보다 나아졌을 지 몰라도, 다뤄야 하는 지적 노동 수준은 10년 전보다 100배는 높아졌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한 것보다 수십 배는 더 공부해야 합니다. 한 건만 잘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대는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소설가가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책상으로 출근하듯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이라는 노동을 해야 합니다. 정신 노동이 얼마나 가혹한 노동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저녁이 있는 삶, 휴일이 있는 여유, 장기휴가가 있는 인생”이라는 Catch Phrase도, 휴식이 일만큼 중요하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지 일 자체가 쉬워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평일 근무 시간에 노동 강도가 올라가야 가능한 삶의 Balance입니다. 쓸데 없는 일은 줄이고 가치 있는 일에만 종일 몰입해야 획득할 수 있는 삶의 Balance입니다. 절대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싼 월급 받고서 자신이 기여해야 할 업무 시간을 낭비하면 그것은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한국이 아닌 미국이나 유럽의 회사에서는 다들 이렇게 평일에 잔인하도록 몰입해서 일합니다. 한국의 평균보다 정말로 잔인한 평일 노동 강도를 지킵니다. 그것이 서양의 혹독한 개인 윤리의식이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문화입니다. 주식회사에서 개인이 회사와 고용계약을 하는 것은 이러한 서양문화에 기인합니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살아남은 이유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가 서양 수준을 초과하고도 남는 잔인한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SK하이닉스에 입사할 수 있을까요?”
“입사하지 마세요. 단, 입사했으면, Fully Devote하세요. 저녁에 쉬고, 휴일에 쉬고, 장기 휴가도 가면서.”

2015년 9월 22일 독서통신

작가의 이전글회사의 대표제품은 구성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