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사람들은 도리어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택하게 된다.” 근대는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인권’을 기반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자유는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 ‘법’에 의해 주어진 ‘자유’입니다. 근대를 통틀어 한 마디로 정의하면, ‘법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 ‘자유 없는 시민’이 각성하고 투쟁한 시대입니다.
공자는 ‘관계’에 충실한 ‘예’에 따른 ‘도’를 추구했습니다. 반면 노자는 인간이 만든 것은 다 인위적인 것이라고 보고 자연과도 같은 ‘흐름’에 충실한 ‘도’를 추구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봐서 ‘도’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도’가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사람은 노자처럼 스스로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판단하고 결정하라고 하면, ‘미쳐’ 죽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스스로 규범에 따른 강제를 따르려고 합니다. 독재에 중독되어 있는 인간에게는 ‘약’이 없습니다. 독재 중독은 정말로 강해서 ‘자유의지’를 아예 발휘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리더는 사람의 ‘자유의지’ 갈망과 ‘구속’당하고 안주하는 양변을 자유자재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민주주의가 꼭 옳은 것도 아니고 독재가 꼭 틀린 것도 아닙니다. 어떤 부분은 독재적으로 어떤 부분은 민주적으로 걸맞게 쓰는 겁니다. 업무 매뉴얼이 독재면, 권한 위임은 민주적입니다. 교육 커리큘럼이 독재면, 독서토론회는 민주적입니다.
“'변화'라는 개념은 전혀 새롭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다. '변화'는 '변하지 않는 것'에서 온다.” 위의 말은 깨달음의 경지가 있는 사람의 말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죽지 않기 때문에 죽음이 있습니다.
주역 제1장 중천건(重天乾)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乾(건)이라 元(원), 亨(형), 利(리), 貞(정)이니라.” 하늘의 이치는 봄에 만물의 삶이 시작되듯 일을 시작하며, 여름에 만물이 무성해지듯 떨쳐 일어나 적극적으로 일을 하며, 가을에 만물이 결실하듯 일을 마무리하고, 겨울에 만물이 정지하여 봄을 기다리듯 참고 견디면서 만물을 분별합니다. 풀이는 아래와 같습니다.
“원형리정(元亨利貞)에서 원은 봄, 즉 시작을 의미하고, 형은 여름의 의미로 뻗어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 리는 가을, 즉 어떤 결실을 본다는 뜻이고, 정은 겨울을 나타내며 어떤 것을 정리하고 준비하는 의미이다. 봄, 여름, 가을은 만물이 활동하지만 겨울은 성장과 활동이 정지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역에서는 이러한 하늘의 대원칙을 ‘삼현일장의 원리’라고 부른다. 셋은 드러내고 하나는 감춘다는 뜻이다. 무슨 일을 할 때든지 새로 시작하는 일에 25%의 시간을 쓰고, 크게 키워가는 일에 25%를, 결실을 보고 이익을 거두는 일에 25%를, 나머지 25%는 향후 준비하는 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시작하고 키우고 결실을 보는 ‘삼현(三顯)의 경영’이 성공적으로 지속되려면 ‘일장(一藏)의 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 항상 키우기만 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와 맞닿은 경영이라고 할 수 없다. 겨울은 혹독하지만 진정으로 봄에 싹을 틔울 수 있는 씨앗만을 엄선하는 계절이다. 혹독한 겨울이야말로 성장과 결실의 원천이다.”
무엇이 변하지 않는 것이고 무엇이 변하는 것일까요? ‘이치’ 또는 ‘도리’가 변하지 않는 것이고, 그로부터 나오는 외형은 항상 변하는 것입니다. 외형의 변화는 순환도 있을 수 있고, 도약도 있을 수 있고, 파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도리를 알고 이치를 알면, 외형이라는 파도 속에서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2015년 9월 24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