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려면, 말이 곧 글이고 글이 곧 말이어야 합니다. 그 기반이 바로 Context 감각입니다. 문장은 하나의 Text입니다. Text와 Text의 연결을 Context라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맥락”이라고 합니다.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말도 안되고 글도 안됩니다. 맥락은 Text 자체에 있지 않고 Text와 Text사이의 빈 공간에 있기에 당연히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오로지 “생각”을 통해서 읽어내야 합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머리 속에서 Trigger되어 뿌옇게 떠오르는 현상을 “실마리”를 찾았다고 표현합니다. 실마리를 구체화하려고 반복해서 읽고, 받아 쓰고, 멈추고, 또 읽고, 다른 데 읽다가 다시 돌아가서 읽습니다.
실마리를 찾으면, 실타래를 풉니다. 그런데 이것이 혼자서는 잘 되지 않습니다. 실타래의 묶인 매듭 찾는 일을 도와줄 동료가 필요합니다. 스승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다른 책을 수도 있습니다. 토론 또는 질문을 통해 놓치고 있는 부분을 알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혼자서는 생각이 자라지 않습니다. 독재가 민주주의와 겨루면 처음에는 이길지 몰라도 결국에는 패망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시대를 보면 바로 그 독재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참지 못하는 꼰대들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맥락과 생각의 소통을 통해 얻은 생각들을 요리로 만들어 자신이 구성한 세계를 남에게 전달합니다. 글 또는 강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고 가르치며 공유하는 과정입니다. “배워서 남 주자”는 모토가 탄생하는 배경입니다. “2015년에 우리 PJT는 꼭 ‘Solution Provider’가 되자”고 했던 말과 이어집니다.
맥락은 “혈맥”과 “경락”을 합쳐서 부르는 말인데, 인체가 제대로 동작하기 위해서 기관과 기관 사이에 피와 기를 원활하게 공급하는 Pipeline을 의미합니다. 이 Pipeline이 막히면 병이 옵니다. 사람이 병드는 이유는 심장과 간에 연결된 혈관이 노쇠하여 막히면서 혈맥에 “압”이 차서 기관이 부패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허준이 동의보감에 이르기를, 불통즉통(不通卽痛) 통즉불통(通卽不痛)이라 했습니다. “통하지 않으면 아프게 되고, 통하면 아프지 않게 된다”입니다. 막히게 되는 이유는 피가 맑지 않아서 입니다. 피가 맑으려면 간과 신장이 최우선 건강해야 합니다. 오행으로 따지면 나무와 물입니다. 채식을 주로 하고 물을 많이 먹으면, 피가 맑아집니다. 피가 맑으면 건강합니다.
인체만 그렇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맥락이 있습니다. 그 맥락이 막히면 아픕니다. 소통은 Communication이라는 단어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말로써 풀릴 일이 있고 침묵으로 풀릴 일이 있습니다. 때를 가려 잘 사용해야 하는 시중, 즉 중용의 도를 잘 써야 합니다. 소통은 본래 “성글게 만들어 서로 잘 통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면도날 하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아구가 꽉 맞아야만 한다면, 숨막혀서 어찌 살겠습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맥락이 있습니다. 타인을 향한 공감과 관심이 있으면, 맥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공감과 관심을 통해 서로 숨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소통의 진정성입니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바로 이 뜻입니다.
2015년 11월 30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