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왔던 사람은 가고 갔던 사람은 오고, 앞선 사람은 물러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옵니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새로운 영광을 위해 자리를 옮깁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수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금강경 사구게.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일체유위법[중생의 삶]은 꿈/환영/파도/그림자/이슬/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보고 지어야 합니다.
원래부터 있던 것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원래부터 없던 것이 잠시 생겼다는 뜻입니다. 불교는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모든 변하는 것은 원래부터 없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도대체 왜 원래부터 없던 것으로 살고 있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거기서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도대체 무상한 것으로 왜 태어나는가?’ 이것이 석가모니 불법의 근본 의문입니다. 이 의문의 답을 얻으면,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 삶의 참다운 의미인 것을 알게 됩니다. 무상한 것으로 사는 동안, 해야 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잘못 살면 다시는 무상한 것으로도 못 살게 되는 이치가 그 안에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면 다들 ‘내가 그동안 잘 살았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당연합니다. 모든 부정도 죽음 앞에서는 긍정으로 바뀝니다.
2015년 12월 11일 사람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