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정서와 감성을 기르는 것은 인성人性을 고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최후의 방법입니다.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마음씨가 바르고 고운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상상력은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상상력입니다. <강의, 신영복>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요? ‘가슴’에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가슴에는 두 개의 육체 기관이 있습니다. ‘폐’와 ‘심장’. 사랑하는 사람은 이 둘 중 어디에 묻을까요? 사랑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진짜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폐’가 아픕니다. 사지가 마비 될 정도로 ‘심장’이 멈춘 듯 합니다. 아픈 사랑은 진짜로 가슴으로 합니다. 역시 황홀한 사랑도 가슴으로 합니다. 맞아요. 사랑은 가슴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알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느끼는 감각과는 달리 머리에 있습니다. 뇌과학은 사랑이 우리 두뇌의 시상하부에 발생하는 호르몬의 작용임을 밝혔습니다. 그 호르몬의 작용으로 감성/정서가 발생하는데, 그것마저도 모두 두뇌에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호르몬의 작용에 단지 반응할 뿐입니다. 그 반응을 두뇌가 다시 받아들여 ‘사랑은 가슴으로 느낀다’고 알게 합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몸에 속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통찰적으로 직관적으로 세상을 분해하지 않고 일체로 인식할 수 있도록 태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이성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분석적으로 부분최적화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덕분에 이성은 살아남았지만, 감성과 정서는 뇌의 뉴론들이 쪼그라들어 숨어버렸습니다. 억지로라도 일부러 시간을 내서 시, 산문, 그림, 음악, 미술, 체육 등을 하지 않으면 이 뉴런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원래 통합되어 있던 걸 다 찢어 놓았기 때문에, 나이 먹어서는 합치려고 해도 잘 합쳐지지 않습니다. 나이 먹어서 어른이 되지 못하고 꼰대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뇌의 인지 부조화의 결과라고도 합니다. 나이 먹은 어른들이 꼰대짓 한다고 해서 화낼 일이 아닙니다.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본인은 늙으면 절대 안 그런다고 주장해도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어른들이 ‘늙으면 죽어야지’ 했던 것입니다. 다들 그 인지부조화를 스스로 알아챈다는 말입니다.
전인적 인간은 (고)신영복 선생처럼 오랜 기간 스스로 갈고 닦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보이는 대로 보면서 살고 느끼는 대로 느끼면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죽음의 순간에 인간은 다시 본래의 모습대로 통찰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로 돌아갑니다. 시간과 공간은 그 순간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감자는 뿌리일까요? 줄기일까요? 오이는 채소일까요? 과일일까요? 때로는 직관이 이성에 반하기도 합니다. 몸을 갖고 사는 한 늘 속으면서 살고 있는 것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2016년 1월 25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