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무난 유혐간택

by 송창록

가섭존자의 염화미소로부터 시작된 석가모니부처님의 심법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가 형태로 조사들 계보로 이어집니다. 달마에 이르러 근기가 있는 스님이 더 이상 인도에 없자, 달마는 중국으로 넘어옵니다. 그 이후 중국에서 선가의 명맥이 이어집니다. 1대 달마, 2대 혜가, 3대 승찬, 4대 도신, 5대 홍인, 6대 혜능으로 이어지고 그 이후로도 쭈욱 이어지다가 한국으로 넘어왔다고 합니다. 달마가 한 송이 꽃의 다섯 꽃잎을 게송에서 말하는데, 6대 혜능까지 게송에 모두 꽃을 담고 있습니다. 달마부터 혜능까지 모두 머물던 산이 조계산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이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상징으로 종파의 이름을 조계종이라고 합니다.


무분별지는 부처님 깨달음의 한 측면을 가리킵니다. 불교에서는 일체를 육경+육근+육식을 합한 18계로 설명합니다. 육근이라는 감각기관 즉, 몸을 가운데로 놓고, 감각기관의 대상과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을 알아채는 인식 이렇게 구분합니다. 우주든 객관이든 뭐라고 하든 간에, 한 개인의 세계 인식 과정을 보면 세계는 이렇게 밖에 존재할 수 없다고 알아채신 겁니다. 무분별지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가 모두 허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잠시 있다 사라질 것이므로 분별할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지혜를 무분별지라고 이름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 법문을 담은 초기 경전에도 있습니다.


지도무난 유혐간택이란 말은 3대 승찬대사의 <신심명>에 나온 한 구절입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간택하는 것만 피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모습이 아무리 제각각 달라도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허상인 것은 똑같은데, 무엇 때문에 이것 저것 따지냐 이런 말입니다. 그냥 그런 줄 알고 사는 것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이것을 깨달으면 “증득”했다고 합니다. 몸을 둘러싼 감각 체계, 즉, 18계가 허상이란 걸 알게 되면 텅텅 빈 맑은 마음을 만난다고 합니다. 그 순간을 “견성”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뭐꼬?”라는 화두를 틀어 안고서 선방에 들어가서 잠도 자지 않고 수행합니다. 이것이 현재 불교 선종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과정입니다.


모든 종교가 우리가 사는 현상은 실상이 아니라고 동일하게 주장합니다. 어떤 종교이든 그 내막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동일합니다. 실상이 아닌 허상의 세계를 벗어나 비록 어딘지는 제각각이지만 목적지로 가는 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인류가 창조한 모든 종교는 믿음의 대상과 목적지만 다를 뿐 동일한 구조입니다. 누가 옳네 그르네 할 것이 없습니다. 이름이 다르다고 근본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종교의 다양성 자체가 인류의 지성입니다.


철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몸을 포함한 물질 세계를 다루는 철학과 인식을 다루는 철학입니다. 철학의 시작은 물질 세계의 구성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는데, 데카르트를 기점으로 인식 자체를 다루는 철학으로 진화합니다. 철학이 인문학의 원형인 이유는 인식, 즉 생각하는 방법 자체를 학문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철학자는 종교의 교리를 인식론적으로 해석합니다. 종교와 철학은 교차점이 없습니다.


현실을 이렇게 생생하게 잘 인식하고 있는데, 종교는 바로 이 현실이 허상임을 깨달으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2016년 3월 28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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