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회에서 한 구성원이 제게 어떤 목표를 갖고 사느냐고 묻더군요. 이런 질문을 하는 구성원은 고마운 사람입니다. 저는 “잘 죽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자기가 지어 놓은 삶의 결과로 죽는 순간 어둠의 길과 빛의 길로 갈립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어둠의 길로 갑니다. 죽음이 마치 없는 것처럼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회한이 없이 산다면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과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반성할 점이 있으면 참회하여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되고,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니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므로 걱정하지 않으면 됩니다. 오로지 숨이 붙은 상태로 움직이는 현재만이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불교에서 인과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당신의 전생이 궁금하면 현생의 사는 모습을 보면 되고, 당신의 후생이 궁금하면 현생의 하는 행위를 보면 된다.” 현생 바로 지금이 모든 인과를 드러내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잘 죽기 위해서는 “도”를 닦아야 합니다. “도”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과 행위가 따라 갑니다. 착한 마음을 내면 착한 행위가 따르는 것이고, 나쁜 마음을 내면 나쁜 행위가 따르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수행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배워야 합니다. 배운 것은 죽고 난 후 다 갖고 갑니다, 마음에 담아서. “도둑질”을 배우면 죽어서도 갖고 가는 것이 “도둑질”이고, “도”를 배우면 죽어서도 갖고 가는 것이 “도”입니다. 그 결정이 바로 오늘 자신이 쓰고 있는 그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잘 죽기 위해서”는 단 하루도 허투루 살면 안되고 “마음 잘 쓰고”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죽을 때도 좋은가는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이치입니다. 인생에서 큰 스승 또는 선지식을 만나서 배워야 합니다. 그런 큰 선지식에게서 배우면, 죽을 때 “도”를 갖고 갑니다. “식목일에 과일 나무를 심는 뜻을 불법으로 풀이하면 무엇일까요?” 이런 화두는 큰 선지식에게서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풀이할 수 없습니다. 세상 경험이 아무리 쌓여도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마음”이고 “도”입니다.
삶 자체가 “수행”입니다.
2016년 4월 27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