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분석

by 송창록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어느 날 갑자기 역사에 등장했습니다. 이 종이 다른 종하고 구분되는 이유는 “추상”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다른 종들은 외부의 변화에 대해 감각을 하고 반응을 한 것이지, “추상”하는 과정은 없었습니다. “뇌”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며, “생각”이 탄생하며, “마음”이라고 불리는 “새김활동”이 등장합니다. “새김활동”이 추상이며, 추상을 표현하기 위해 나머지 인류의 문화적 형태가 탄생합니다. 현생 인류는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여 대상을 관찰하고 분석하여 도구를 설계함으로써 육체의 외연을 확장합니다. 육체의 외연이 확장된 결과가 바로 문명입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내용을 다시 각색해 보았습니다. 현생 인류의 후손인 우리를 우리이게끔 하고 있는 것이 뇌의 추상입니다. 추상의 세계에서는 현실과 상상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상상만으로도 뇌를 단련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뇌는 내분비계와 신경계를 통해 육체에 신호를 보내 변화를 유도합니다. 이 말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마음먹은 대로 육체의 외형이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항상 좋은 마음을 내면 좋은 얼굴로 변하고, 항상 나쁜 마음을 내면 미운 얼굴로 변한다는 말이 바로 이 뜻입니다.
우리의 일은 크게 보면 5단계의 일로 진행됩니다. 관찰 -> 분석 -> 전략 -> 실행 -> 평가(복기). 이 중에 어디가 가장 중요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될까요? 일반적인 사람들은 실행, 즉 몸때를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나은 사람이면 전략이라고 하겠지요.


고수가 될수록 더 앞쪽에 공을 들입니다. 분석에 가장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고수의 반열에 입문한 것입니다. 절정의 고수는 관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입니다. 해결책을 내기 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더 집중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지요. 정작 사람들이 아는 세상은 실상이 아니니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닙니다. 다들 콩깍지를 뒤집어 써서 자기의 Frame으로 세상을 단정하여 봅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사실상 없는 것이지요.


잘못인 줄 알고 저지르는 범죄와 잘못인 줄 모르고 저지르는 범죄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큰 해악일까요? 잘못인 줄 알고 저지르는 범죄는 한두 번 하다가 지적을 받거나 벌을 받으면 멈춥니다. 잘못인 줄 모르고 저지르는 범죄는 지적을 받거나 벌을 받아도 잘못인 줄 모르기 때문에 계속 반복됩니다. “소시오패스” 류의 정신 세계를 가진 사람이 이런 사람입니다. 실생활에서 꾸준하게 독선적이고 악랄하고 매몰차고 비인격적인 사람은 그렇게 해도 괜찮은 줄 알기 때문에 합니다. 타인에게 그러한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계속 저지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으로 윤회하지 못하는 세가지 독을 욕심(탐)/성냄(진)/어리석음(치)이라고 알려줍니다. 어리석다는 것, 즉 모르고 있다는 것이 죄의 근본 요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죄를 짓고 있습니다.


현상을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터지고 보면 지금까지 안다고 한 것이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걸 발견합니다. 다들 전략과 실행으로 달려가기만 하고 관찰과 분석에 집중하는 고수를 키우지 않습니다. 사실 고수는 키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발견될 뿐이지. 고수는 비록 가르침을 받더라도 결국에는 스스로 이룹니다. 문제가 터지고 나면 꼭 전문가가 없다고 하소연 합니다. 전문가는 전략과 실행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찰과 분석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문제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암만 전략을 짜고 실행해봐야 뻘 짓 밖에 더하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말이 요즘 유행하는 것이지요. “뭣이 중헌디?”

2016년 7월 26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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