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민주주의

by 송창록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다”는 만화 미생의 멋진 말을 기억합니다. 사람은 모두 다릅니다. 쌍둥이조차도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채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화합입니다. 같은 생각, 같은 모습, 같은 행동을 하며 영화 “스타워즈”의 클론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같음에서는 창의성이 있을 수가 없지요. 창의성의 토양은 다름입니다.


다름은 민주주의의 토양이기도 합니다. 인간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는 이론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시민이 150명 안쪽이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그걸 넘어서면 우리 두뇌가 적응하지 못합니다. 팀은 최저 단위가 피자 한 판, 그룹은 아무리 커도 150명이내여야 합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간접민주주의를 해야 합니다. 즉, 대의민주주의이지요.


대의민주주의는 그 근본이 다름을 전제로 합니다. 다르기 때문에 의사 결정을 위하여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토론에서 졌다는 것은 대의성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본적으로 국회는 싸우는 기관입니다. 국회가 싸우는 것을 뭐라 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의미를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수결로 처리하면 되지 왜 싸우냐고 할 수 있는데, 다수결은 의사 결정의 최후 수단일 뿐입니다. 토론 과정이 없이 진행된 다수결은 대중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저버린 행위입니다. 토론은 그 근본이 치열한 싸움입니다. 육체적 폭력이 아닌 언어적 폭력입니다. 주먹싸움이 아닌 수사학에 근거한 말싸움입니다. 국회의원이 세련되지 않은 말싸움을 한다면, 그 선거구의 다수 국민이 세련되지 않은 개차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얼굴에 침뱉은 격이지요.


대의민주주의는 정당 단계에서부터 국민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면서 정치 허무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대의민주주의의 정신에 어긋납니다. 믿을 만한 정당이 없으면, 자신들만의 정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다당제 국가인 이유입니다. 집회/시위/결사의 자유가 의미하는 것도 대의민주주의입니다. 정당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걸치지 않고 국민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자유입니다. 그 궁극이 시민혁명이 될 수도 있지만요.


직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직장은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돈이 지배하는 “돈주주의”의 세상입니다. 모든 관리자는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실행하는 대리인입니다. 이것이 미국식 “경제민주화”입니다. 그래서 “소액주주운동”이란 것이 탄생한 까닭이지요. 이것은 미국에서도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난 “경제민주화”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에서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한 것일까요? 다름이 전제가 되어서 Bottom-Up하는 민주주의가 정말로 불가능한 것일까요? 관리자가 민주적인 리더라면, 주주의 이익과 구성원의 행복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구성원의 다름을 레버리지로 삼아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경영학뿐만 아니라 리더십에서도 가장 중요한 리더의 역할입니다.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저마다 다름에 기반하여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 리더가 할 일입니다. 성과는 오로지 그 바탕 위에서 구성원이 스스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2016년 12월 12일 사람통신


민주적 선택의 결과로 목숨을 잃는 것도 결국 시민입니다. 분포의 Edge는 어떤 선택에도 불구하고 죽습니다. 혁신은 Edge를 보호하는 방법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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