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전사에 4대 해전이 있습니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 1588년의 칼레 해전, 1592년의 한산도 해전, 1805년의 트라팔가 해전입니다. 학익진을 펼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해전이 세계 4대 해전에 들어 있습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도시국가 연합 아테네와 세계 제국 페르시아가 맞붙은 전쟁입니다. 영화 “300-제국의 부활”은 이 해전을 배경으로 합니다. 세계 해전사에서 살라미스 해전은 해전의 방식이 달라지는 변곡점이 됩니다. 영화를 자세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살라미스 해전 앞의 모든 해전은 해적들의 싸움과 같습니다. 갈고리나 밧줄을 상대의 배에 던지고 올라타 보병들이 칼과 창으로 백병전을 펼쳐 지휘관을 쓰러뜨리거나, 배를 점령하면 이기는 전투입니다. 배는 떠다니는 육지일 뿐입니다.
살라미스 해전에는 소위 말하는 충각(衝角) 전법이 등장합니다. 삼단노선(트라이림)에 청동으로 된 구조물을 달아 그것으로 적함을 들이받아 배 자체를 부숴버리는 전쟁 방식이 최초로 등장합니다. 배 그 자체가 전투의 무기로 변신합니다. 이순신 장군도 판옥석의 뱃머리로 적의 배의 옆면을 들이받는 충파 전술을 구사합니다. 이 충파 전술을 할 때는 거북선이 선봉에 섭니다.
영화가 끝나면 아래의 여인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왕인 아르테미시아(에바 그린 역). 에바 그린이 근육질의 남정네들 사이에서 너무 강렬했던 이미지를 남겼지요. 역사에 따르면,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왕인 아르테미시아는 해전을 반대합니다. 그리스 해군력(싸우는 실력)이 페르시아의 해군력보다 몇 배는 우세하고, 이미 아테네를 페르시아가 점령했기에 굳이 싸우지 않아도 그들은 곧 항복할 것이라는 논리를 들어서 말입니다. 해전을 진행하자고 주장하는 페르시아 군 내부의 다국적 지휘관을 조롱하기까지 하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전해집니다. “주인이 훌륭하면 노예들이 형편없고, 주인이 별 볼일이 없으면 오히려 노예들이 자신들의 일에 충실한 법인데, 폐하께서는 가히 이들 중에 최고이시므로 노예들이 형편없다는 옛말에 틀린 것이 하나 없습니다.” 여왕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2016년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아무튼 그리스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미미한 피해를 입은 반면, 페르시아군은 4만여 명의 병사를 그대로 수장시켰습니다. 이것을 표현한 시가 비이런이라는 시인이 쓴 “Don Juan”란 시의 일부분입니다.
왕은 바위 벼랑 위에 앉아서
살라미스의 바다를 내려다본다.
저 아래 수천 척의 배들과
온갖 민족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것이다!
왕은 동이 틀 무렵 그들의 수를 셌다.
해가 질 무렵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
“돈 주안(Don Juan, 86.4)”
소위 서양판 적벽대전입니다. 육지에서 싸움이 능한 자가 함부로 해전 또는 수전으로 싸움을 걸다가 망했다는 것이지요. 바로 자만심이 모든 일을 그르칩니다. 이럴 때 “조조답다”고 말합니다.
그리스 연합 함대의 사령관이었던 테미스토클레스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본국으로 귀환한 후 아테네로부터 추방되어 방랑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위기와 난세에 빛나는 전쟁 영웅은 평화가 찾아오면 독재의 위험성이 높은 지도자로 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방랑하며 10년째 타국을 전전하던 중에, 위대한 전쟁사령관을 이렇게 썩힐 수 없으니 자신을 버린 조국을 공격하는 것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을 결코 배신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독이 든 잔을 마시고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런 모습이 보수다운 보수입니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시대에 보수란 보수가 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광복 이후에 보수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친일 세력이 얼마 남지도 않은 보수를 좌파로 몰고 지금까지 보수 코스프레 하고 있다고.
2016년 11월 7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