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은 정치제도 뿐만 아니라 경제제도도 자본주의 사회와는 많이 동떨어진 나라입니다. 국왕이 지배하는 나라가 미국식 민주국가일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에서 과잉 생산으로 인한 풍요를 경험하고서 부탄에 가서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사실 행복은 계량이 되지 않는 것이고 매우 주관적인 느낌입니다. 국가간 비교가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합니다. 국가간 경제력 차이가 국민이 느끼는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것.
인간은 과잉생산 체제에서는 점점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이런 점은 마르크스가 매우 잘 분석하였습니다. 생산성은 좋아지는 대신에 고용율은 낮아집니다. 이 미스매치가 무슨 일을 벌이는 지는 명약관화입니다.
근본 문제는 경제제도 그 자체가 갖고 있습니다. 경제제도의 취약점을 국가가 또 하나의 경제 주체로서 Balancing을 잡아주는 것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성장과 분배는 자본주의라는 경제 제도와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치 제도의 양단입니다. 한 쪽으로 기울면 다른 쪽에 무게를 실어 Balancing을 하는 것이 중용입니다. 이걸 누가 하냐구요. 바로 시민(Citizen)이 합니다. 국가의 주인인 시민이 절차에 따라 선택합니다.
불행히도 한국은 국가의 지배를 받는 국민은 있어도 국가의 주인이 되는 시민은 없었습니다. 국가를 시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민주국가의 정부를 왕정국가의 왕정과 동일시 하는 의식이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왕정국가의 신민은 왕권에 도전하지 못하므로 갈등의 화살을 도전하는 아웃사이더에게로 향합니다. 이민자, LGBT, 장애인, 여성 등등.
누구나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 “잘”에 대한 욕망이 모두 다릅니다. 욕망의 기준이 다르면, 행복의 기준도 달라집니다. 인류의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릅니다. 이걸 자꾸 패거리로 몰아서 “니편 내편”하는 것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행복 지수를 높이려면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보편성을 받아들입니다. 모든 개인이 “One of Them”으로서 소중하다는 걸 받아들이며 삽니다.
2017년 3월 9일 독서통신
이런 부탄에 TV가 그 다음 스마트폰이 도입되어 글로벌에 노출되면서 행복지수가 떨어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