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by 송창록

“나는 SK하이닉스 DRAM공정개발그룹 그룹장입니다.” 이 말을 잘 뜯어보면 세 가지가 있어요. 일단 ‘나’가 있구요. ‘SK하이닉스 DRAM공정개발그룹 그룹장’이 있구요. 이 둘을 알아채고 있는 ‘나’가 있습니다. 이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철학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주체파’와 ‘존재파’. 주체로서의 나를 다루는 철학과 존재로서의 나를 다루는 철학입니다. 무슨 난데 없이 철학이냐 하겠지만, 이 차이가 세상살이를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판단하게 합니다.


‘나’는 전체로서의 나입니다. ‘SK하이닉스 DRAM공정개발그룹 그룹장’은 부분으로서 ‘나의 것’이구요. 즉, 이 문장은 ‘나’와 ‘나의 것’ 사이의 ‘자기 관계’를 표현합니다. 뒤집어서, ‘SK하이닉스 DRAM공정개발그룹 그룹장’이 ‘나’입니다 라고는 말하지 않아요.


여기에 더해서 이런 자기 관계를 알아채고 있는 ‘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로서 객체화된 ‘나’와 그것을 알아채는 주체로서의 ‘나’가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 ‘주객관계’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이 셋의 관계로서 바라봅니다. 회사에 들어오는 많은 협력회사의 임직원들은 ‘나’를 만나고자 합니다. 그들은 ‘SK하이닉스 DRAM공정개발그룹 그룹장’을 만나고자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SK하이닉스 DRAM공정개발그룹 그룹장’인 ‘나’를 만나고자 하는 것일까요?


백이면 백,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SK하이닉스 DRAM공정개발그룹 그룹장’을 만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잠시 ‘SK하이닉스 DRAM공정개발그룹 그룹장’을 맡고 있는 전체로서의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 관계는 ‘나’와 ‘나’가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것’과 ‘나의 것’이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나의 것’끼리 만나는 자리에 ‘나’를 접어 넣으면, 충돌이 발생합니다. 때로는 좋은 의미 일수도 있고 때로는 나쁜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직무에는 직격이 있습니다. 직격을 다른 말로 그 자리에 걸맞는 역량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되면, ‘나의 것’을 ‘나’로 일치화합니다. 즉, 부분이 전체를 잡아먹습니다. 다른 말로 인식의 폭이 좁아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단은 이 시점에서 발생합니다. ‘나의 것’은 잠시 ‘나의 것’인 ‘공공의 것’인데, 그것을 ‘나’와 일치화함으로써 ‘나의 것’의 사유화가 발생합니다. 국가도, 사회도, 회사도, 직책도, 직무도, 공공자산도 그 순간부터 ‘나’와 동일시됩니다. 그 결말은 보지 않아도 비디오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와 ‘나의 것’이 공존합니다. 그런데 왜 자꾸 ‘나’와 ‘나의 것’이 일치화될까요? 철학적으로 이 문제의 답은 바로 ‘나’와 ‘나의 것’을 알아채는 ‘나’를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만약 ‘나의 것’을 ‘나’로 일치화하는 것이 죄악의 근본이라고 한다면, 인류에게는 일말의 구원조차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무섭고 고통스러운 세상입니다.

2017년 3월 27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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