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과 납득

by 송창록

설득과 납득을 분리하는데, 사실 설득과 납득은 같은 현상의 양면입니다. 무언가를 건네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설득해야 하는 거고, 무언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납득해야 합니다. 아이디얼하게는 설득과 납득을 동시에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함정.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날마다 심리적 설득 기술에 당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쇼핑의 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나면, 우리가 사고 싶어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을 당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경우에 설득을 당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득을 당하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설득을 당하기 전까지는 내가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안 그런 거 같죠? 사실 날마다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채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을 당하지 않고 납득을 할 수 있을까요? 설득 당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납득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설득하는 사람과 납득하는 사람이 합의하고 공유하는 기준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이 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설득은 당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갑과 을도 상대적인 게임입니다. 대안이 없는 사람이 을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서는 일찍 태어난 것이 다행일 수도 있지만, 역으로 일찍 태어났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선택지가 빨리 사라지는 불운이 있습니다. 선택지가 없는 사람이 현재의 자리를 잘 보존하려면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남을 더 잘 도와줘야 합니다. 그렇다고 연장근무나 휴일근무 많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이 더 잘 되도록 많은 혁신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들이 회사의 규모를 두 배 세 배로 키워 놓아야 나의 자리가 보존됩니다. 대안이라는 선택지가 없는 사람은 절대로 갑일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 회사 생활의 진정한 갑은 CEO와 신입사원 뿐입니다. 이 둘만 회사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나머지는 다 자기 자신만 걱정하고 있다는.

2017년 3월 28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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