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발성과 전문가

by 송창록

어느 대학교에서 새로운 캠퍼스를 짓습니다. 건물을 배치한 후 길을 내야 하는데, 길을 내지 않고 건물 사이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전부 깔아버립니다. 개강을 하고 한 학기가 흐르자 건물과 건물 사이 그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잔디 위에 오솔길이 생깁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다니면서 Short Cut을 만듭니다. 방학이 되자, 그 길을 따라 벤치와 게시판 등 부속 시설이 생깁니다. 학생들이 걷는 길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차량이 드나드는 길도 만듭니다.


다시 한 학기가 지나가자, 잔디 위에 새로운 오솔길이 생깁니다. 조건과 환경이 변하자 학생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긴 결과입니다. 다시 방학이 되자, 그 길을 따라 벤치와 게시판 등 부속 시설을 추가하거나 이동합니다. 캠퍼스는 학생들의 개인적인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무작위적인 “창발성”에 근거하여 조성됩니다.


건물은 그저 환경에 불과할 뿐 조경의 핵심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가진 의미는, ‘자생적이고 통제 없이 이루어지는 개인들의 노력은 경제 활동의 복잡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전문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도록 의도적인 개입을 막는 역할입니다. 도시를 계획적으로 조성할 수 있다는 것. 인간이 전문성을 획득하여 전지전능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의도를 위해 Expert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2017년 4월 3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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