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기준

by 송창록

두 가지 기준으로 인간 그룹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누는 경우. 다른 하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누는 경우.


정상인 vs. 비정상인은 정상인을 먼저 정의해야 합니다. 정상인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정의하거나 자기가 욕망하는 모습을 통해 정의됩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비정상인이라고 낙인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사회의 가치 기준이 모두 “나”를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나”를 벗어났을 때 다시 그 “나”로 회귀하기 위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장애인 vs.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먼저 정의해야 합니다. 장애인은 육체적, 정신적, 성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핸디캡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됩니다. 이 정의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비장애인은 장애의 요인을 갖고 있지만 발현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사회는 장애인과 장애인이 될 예정인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입니다. 사회의 가치 기준이 “약자”를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선과 악도 동전의 양면인데, 위와 같이 유비할 수 있습니다. 선과 비선으로 세상을 나누는 관점이 있고, 악과 비악으로 세상을 나누는 관점이 있습니다. 선을 먼저 정의하면 나는 선하고 나머지는 모두 악이 되는 세상을 만납니다. 악을 먼저 정의하면 악을 저지른 사람과 악을 저지를 예정인 사람들이 있는 세상을 만납니다. 종교는 본성 상 두 모습을 모두 가질 수 있고 각각으로 편향될 수도 있습니다. 선을 먼저 정의하는 종교는 호전적이고 악을 먼저 정의하는 종교는 호혜적입니다.


종교는 현실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습니다. 다만 현실 세계와 현실 너머의 세계는 동일한 이치로 관통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 때문에 종교적으로는 우리가 현실 너머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온 것입니다. 이런 세상살이를 관통하는 이치를 알면 세상살이가 밝아집니다.


그래서 “도”를 닦습니다. 믿을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세상이게끔 존재하게 하는 이치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버릴 것을 하나 하나 걷어내면서 그것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 이치는 우리가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세상의 기반입니다. 이치를 알면 자신의 길을 알고서 가는 것이고, 모르면 자신의 길을 모른 채 가는 것입니다. 길을 잃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겪어봐야 압니다. 다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살이 이치 중 하나가 자신이 선택한 대로 자신을 이룬다 입니다. 무엇을요? 자신이 가는 길을. 남이 절대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두면 세상이 존재하는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요. 모순되는 상황을 타개할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깨달음을 갖지 못하고 살면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깨닫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후회는 언제나 늦다”는.

2017년 4월 24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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