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rning은 본성이다.

by 송창록

영화 “Her”를 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예고편을 보고 인공지능 OS(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구나 하고 알았습니다. 인공지능은 Learning의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말도 예상이 가능합니다. 사실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참 매략있습니다. 목소리만 듣고 정말 사랑에 빠질 수 있나 생각하겠지만, 인간은 어느 한 감각만 동작해도 뇌의 작용을 거쳐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인식합니다.


인간은 인공지능의 관점에서는 Learning이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반면 인공지능은 Learning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인공지능의 관점에서는 사랑도 학습 대상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면 다른 학습을 위해 떠납니다.


누구나 처음에는 열정적인 사랑을 합니다. 그러다가 처음 생각한 모습과 다르다고 판단하면 실망하고 헤어집니다. 흔한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 상대가 성장하는 만큼 변하는 모습을 받아들이면서 사랑이 깊어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성장하는 상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모습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인공지능만이 Learning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일까요? Learning은 원래 사람의 본성입니다.


성장이 사람의 본성이라면 달라지는 것조차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너무 달라서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기꺼이 떠나주는 것 또한 사랑입니다. 만남과 이별 모두 사랑인 것이지, 어느 하나만이 사랑인 것은 아닙니다. Learning이라는 본성은 낯섦에 대한 도전입니다. 사랑을 학습한 인공지능 그녀가 머물러 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요. 우리는 어쩌면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몸과 마음의 적응 반응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연결을 상징하는 Web은 존재하는 모든 Bit에 도달할 것입니다. 미시적 사건이든 우주적 사건이든 Bit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는 세상이 열립니다. 그런 세상에서 알고리즘이 신을 대체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현상을 겪게 됩니다.


“망 속의 화면에서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된다. 새 창작물의 지위는 평론가가 주는 평점이 아니라, 그것이 나머지 세계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사람, 물건, 사실은 연결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결되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다’의 의미를 시인은 황홀하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

2017년 4월 26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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