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Edge에서 시작한다

by 송창록

“성스러운 암소”라고 하지요.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관습처럼 해오고 있는 것들. 누군가가 과거의 특정 조건 하에서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살아 남아서 관례처럼 해오는 것입니다. 기존부터 있어 왔던 내부자의 눈에서야 “성스러운 암소”이겠지만, 다른 조건과 환경에서 살다가 최근에 합류한 외부자의 눈으로 보면 “부가가치가 없는 일”이 됩니다.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 남습니다. 종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변이를 다양화하여 Split을 합니다. 그 중 특정 변이가 변화한 환경에 Match가 되면, 그 특정 변이의 수가 증가합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진화라고 합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닙니다. 진보를 정의하는 것은 독선적이기까지 합니다. 종은 환경에 최적화된 종을 내놓을 뿐입니다.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은 종만이 강한 종일 뿐입니다.


인류의 삶이 더 나은 삶을 향해간다고 할 수 없습니다. 효율이 더 나은 삶을 이룬다고도 할 수 없구요. 사업 환경이 고효율을 추구하는 환경으로 바뀌었는데, 생각하는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이나 여전히 저효율적인 방식이라면,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얘기입니다.


사라짐을 저지하기 위해서 회사와 사회에도 돌연변이 즉 똘아이가 자연발생합니다. 똘아이를 잡초로 인식하고 제거하는 한, 순종의 잔디밭은 사람이 스스로 찾아오는 화원으로 절대 바뀔 수 없습니다. 혁신은 똘아이들이 변방에서 자기 증식하여 최종적으로 중앙을 점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변방에서의 자기 증식은 Homogeneous Nucleation이 아니라 Heterogeneous Nucleation이며, 주류와 다른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서 Embryo가 탄생하는 과정입니다. Grain Growth가 일어나면 과성장이 발생하고, 과성장 에너지를 기반으로 2차 성장이 촉발되어 안정화되면 한 차례의 혁신은 생명을 마칩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조건과 환경이 변화하고 변방에서는 다른 혁신이 Nucleation하고 있습니다.


주류는 이끌려 가는 삶입니다. 오직 변방에서만 주인이 되는 삶이 시작합니다. 혁신하는 삶들은 중앙 무대에서 스스로 벗어나서 오로지 Edge를 추구합니다.

2017년 3월 24일 사람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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