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 산책, 사색, 여행 그리고 고독. 어쩌면 과거에 남성의 상징이기까지 했던 이 단어들은 오늘날 모두에게 필요한 비타민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몇 년만 더 지나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 수보다 일 하려는 청년의 수가 더 적습니다. 산술적으로 청년실업은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공급자와 수요자간 일자리의 눈높이 차이가 있습니다. 수요는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어서 공급이 남습니다. 그 이유는 거기서는 용이 탄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정성도 없습니다. 아무튼 일자리를 구할 의지만 있다면 굶어서 죽지는 않습니다. 복지국가를 향한 헌법적 가치가 실현된 국가입니다.
부가 어느 한 세대 전체를 관통하여 삶의 목표가 되던 시기는 끝났습니다. 이제 부자라는 가치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야 하는 세대는 꿈을 바꾸어야 합니다. 부모 세대의 꿈은 그대로 자식 세대에게 감염됩니다. 감염된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의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는 생존하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대치동 아이에 비교하면 너무나 절망적인 어두운 청년들의 삶이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도 않고 항상 번드르르한 정면의 화려함에 가려져 있지요. 그 청년들을 취재한 글 중에 백미는 아래의 글입니다. “가난한 청년들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란 도발적인 제목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청년 빈곤.
http://1boon.kakao.com/h21/poverty
그들 중의 일부는 꿈이 있습니다. 공무원이나 직장인이 되는 그런 꿈이 아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꿈. 그 꿈 옆에는 항상 가난과 절망이 함께 합니다.
(고)신해철은 청년들의 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은 다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여기서 벗어나서 뭐라도 일을 하면 생계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여기서 발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알바자리에 일단 가게 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까봐.”
https://www.youtube.com/watch?v=VHQWVmuE58A
(고)신해철의 저 말들은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해보았기 때문에 나오는게 아닙니다. 신해철은 서강대 출신으로 대학가요제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한 후 잠시 부침은 있었지만 대체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런 생각이 가능할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정성이 깃든 관찰 그리고 속 깊은 공감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그리고 참 많은 독서.
저와 비슷한 나이를 가진 사람들은 공부도 덜 했으면서도 일찍 태어났다는 복으로 이만큼 살고 있습니다. 우연히 일찍 태어나서 그런 복을 누리고 삽니다. 자식 세대에게는 편리한 문명이긴 하지만 삶 자체로 보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미래의 발전은 예측이 가능하지 않지만, 그 미래에 무슨 일을 하고 살지는 더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부모로서는 최소한 자식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지원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사회와 국가는 최소한 청년이 스스로 자립하여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청년 복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 세대는 청년 세대가 이룬 경제적 성취 위에서 노년 복지를 통해 생의 마지막을 살게 됩니다. 부모 세대가 오래 살면 자식 세대에게 등골브레이커가 됩니다. 좋은 세대에 태어나서 복은 다 누리고 죄만 짓고 가는 세대가 되지 않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58년 개띠는 1차 베이비부머 세대입니다. 젊어서 고생하였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부와 복을 다 누리고 산 세대입니다. 이들의 부모가 지금 100세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80세에서 90세를 사는 부모들이 모두 병을 앓으면서 오래 오래 살고 있습니다. 이들마저도 부모의 의료비로 인해 파산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모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비정함이 극에 달합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21420052
2017년 5월 2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