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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

by 송창록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을 저는 지난 주에 다 읽었습니다. 예전부터 제가 알고 있던 여러 것들이 낡은 편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되고 창의적인 분석 기법들이 활용되면서 앞선 가설들이 기각되고 새로운 가설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인류의 고대사는 비록 과거로서는 결정되어 있더라도 역사라는 관점에서는 지금까지 계속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입니다. “모든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라는 명제는 그런 점에서 정말로 놀라운 통찰입니다. 사고의 낡음과 편견보다 더 악독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어느 한 분야에 통달을 하면 그 사유는 확장을 통해 다른 분야에도 막힘이 없이 통하는 경지가 됩니다. 그 정도로 잘 알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건성건성 해서는 그 경지에 이를 수가 없지요. 심지어 가족을 돌보지 못할 정도의 희생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는 그것을 “1만 시간의 법칙”으로 표현했지요.


진화는 환경 변화의 방향에 유익한 생명체가 확률적으로 많이 생존한 결과를 표현하는 학문적 정의입니다. 인류의 진화는 다양한 돌연변이와 잡종 중에 생존에 유익한 특성을 가진 돌연변이와 잡종이 다수를 점해 생존한 변화입니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기 때문에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인류이게끔 한 진화의 방향성은 치명적인 부작용 즉 대가를 지불하게 했습니다. 진화는 완전체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무언가를 얻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변화입니다. 불완전성 그 자체가 완전이라는 의미입니다. 진화에 완전이란 의미는 없습니다.


인류사적 시간에서의 변화조차도 대가를 지불하고 생존을 얻은 사건이라면, 한 인간의 짧은 삶에서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비록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었다면 어느 시점에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공짜를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중에 목숨을 앗아갈 대가를 달라고 할 지 어찌 알겠습니까. FAB 공정 변경에 있어서 거대한 실패 사례는 모두 대가에 대한 고려 없는 단기적 이익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수율을 얻으려다가 품질을 박살내는 일은 모두 대가를 고려하지 않은 오만과 편견의 결과입니다. 인류의 번영도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입니다.


지구 역사상 생명체의 대부분이 절멸한 대량절멸이 5번 있었습니다.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인류세는 인간에 의한 6번째 대량절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진화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므로 자기 스스로를 대량절멸시킬 수 있는 존재입니다.


영화 “Matrix” 시리즈에서 “Matrix”는 5번 Reload되고 6번째 “Neo”(키아누 리브스)가 등장합니다. 6번째 “Neo”가 Matrix를 장악한 “스미스”에 동화되기를 선택하면서 Matrix가 파괴됩니다. 6번째로 Reload된 세상에는 아직 인간이 없어서 텅 비어 있습니다. 형제에서 자매로 자발적으로 트랜스포메이션한 “워쇼스키”들은 무슨 생각으로 Matrix를 만들었는지 정말 신기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이 세상에 절대로 공짜는 없습니다.

2017년 5월 22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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