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선생의 글에 따르면 깨달음에 이르는 5단계가 있습니다. 숙능달통각. 익힐 숙, 경험 많을 능, 막힘이 적어지는 달, 지혜가 사방으로 이뤄지는 통, 지혜가 고도로 이뤄지는 각. 지혜가 시작되는 단계가 통이고, 지혜가 다 끝나면 각입니다.
달까지는 정보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에 이르면 드디어 맥락을 잡아내게 됩니다. 비유가 자유 자재로 일어나며, 세상을 볼 때 사물의 격으로 보지 않고 사물의 맥락으로 보게 됩니다. 각에 이르면 세상을 이치로 보게 되며, 존재는 비존재이고 비존재가 존재임을 이치로서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본래 이치란 말은 불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의 현상이 그러할 수 밖에 없는 연유 또는 까닭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치는 현상과 본질 사이의 관계에 존재하고, 이치를 이치이게끔 하는 근본을 도라고 합니다.
인간의 지적 단계를 이렇게도 비유할 수 있습니다. 관찰에서 시작하여 통찰을 지나 직관에 이른다고. 배우는 동안은 관찰하는 것입니다. 맥락이 보이면 통찰이 생깁니다. 이치를 알면 직관이 발달합니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알아지는 것이지요. 언감생심이라고 수행하지 않고서는 이 경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맥락은 사물과 사물의 연결 및 관계를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Context입니다. 모든 사물이나 단어는 외형이고 그 안에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내용을 Contents라고 합니다. Contents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는 Contents와 Contents간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합니다. 이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 의미를 맥락, 즉 Context라고 합니다.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단어의 뜻만으로 판단하면, 한 마디로 “새”되는 짓입니다.
본래 맥락은 한의학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인체의 각 장기를 연결하는 혈맥과 경락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인체의 모든 장기는 맥락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장기가 Contents이고 맥락이 Context가 됩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철학적 인식으로 전환합니다. 질량이 시공간의 휘어짐을 만든 것일까요? 아니면 시공간의 휘어짐을 질량이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맥락이 장기를 연결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맥락이 뭉쳐 있는 특이점이 장기일까요? 인체는 장기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맥락으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서양의학은 인체를 물체로 다루기 때문에 인체를 장기의 집합으로 봅니다. 한의학은 인체를 맥락으로 보기 때문에 인체를 맥락의 흐름으로 봅니다.
한의학적 사고를 집대성한 동의보감은 맥락의 흐름에 이상이 발생한 것을 병으로 봅니다. 반도체 제조 물류에 비유하면 Bottle Neck이 인체의 병에 해당합니다. 즉, 맥락이 어딘가에서 막힌 것이 병입니다. 서양의학의 치료는 병을 제거하는 것이고 한의학의 치료는 병을 푸는 것입니다. 물류 Bottle Neck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가지 처방이 있습니다. Bottle Neck을 직접 제거하는 방법과 Bottle Neck이 생기지 않도록 주변의 맥락을 조절하는 방법. AI(인공지능)가 등장하면 맥락을 조절하는 일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맥락입니다. 평상시에 사소함으로 소통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의를 도모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겠습니까. 특정 시기에 일사분란하게 하나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평소에 서로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신뢰를 쌓은 것입니다. Bottle Neck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관계의 맥락인 일상을 정말 소중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사소함으로 특별함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맥락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세상의 이치를 이 짧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불통즉통(不通卽痛) 통즉불통(通卽不痛)
통하지 않으면 아프고, 통하면 아프지 않다.
2017년 5월 27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