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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실체는 머리 속에만 있다

by 송창록

현빈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역린’에 중용 23장을 현대적으로 멋지게 번역한 대사가 있습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다만 일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는 귀천이 있습니다. “여행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대한항공 광고처럼, “생각 어디까지 해봤니?”란 말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관찰이고 관찰의 세심함은 정성이 깃들어야 나옵니다. “Attitude로 고용한 후 Skill을 가르치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무비클립에서 정조(현빈)는 신하들에게 중용 23장을 외우고 있냐고 묻습니다. 그렇게 소중하다면, 외우고 있어야 하지 않냐고 질책합니다. 책에 나온 얘기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신하들은 아무도 외우지 못합니다. 글을 눈으로만 읽은 것입니다. 마음에 새기지 않고. 논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합니다. “즐기는 것은 아예 통째로 외우고 있는 것만 못하다”고. 우리 구성원 중 일부는 그룹장을 잘못 만난 죄로, Tech의 Full Process Step을 외우는 Test를 해야만 했습니다. 놀랍게도 전부를 외우는 구성원이 전체의 절반이나 나왔습니다.


DRAM의 건축구조는 복잡해서 3차원 제작 과정이 머리 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이미지는 제작 과정을 완전히 외우고 있어야만 그려집니다. 결과적으로 외워야만 제작 과정의 일정한 반복적인 Pattern들이 머리에 추상화됩니다. 추상이 메타인지로 존재하면, 하나의 단위 공정의 역할이 전체의 부분으로서 차별화하여 그려집니다. 단위 공정이라고 다 같은 단위 공정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Tech이 바뀌면 외우고 있는 Full Process Step과의 차이점만 반영하면 되니, 이제 외우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오로지 제일 처음 외우는 것이 고통스럽게도 가장 어렵습니다. 여기를 뚫어야 합니다.


자꾸 머리 속에서 3차원 구조를 그려보아야 합니다. 온전한 실체는 오직 머릿 속에만 존재합니다. 나머지는 모두 그림자입니다.

2017년 6월 14일 사람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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