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니 지금은 자주, 저에게 이런 질문이 들어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요?” 딱 잘라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취감이 있는 일을 하세요!”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본질이 외형을 결정할까요? 아니면 외형이 본질을 결정할까요?” 철학 공부하는 시간이 상당히 지나면 이런 걸 깨닫습니다. “본질이 외형이고, 외형이 본질이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저는 거기에 하나 더 덧붙입니다. “즐기는 것은 통째로 외우는 것만 못하다”고.
“열정을 가지라” 또는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힐링 멘토들의 단골 멘트입니다. 이 말은 수많은 사람들을 착각에 빠뜨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그 일을 좋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원을 바라봐야 합니다. 거의 대개가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칭찬과 평가로부터 온 감정입니다.
이것이 직업의 세계로 들어오면 다른 차원의 일이 됩니다. 취미로 할 때는 칭찬받던 일이 돈을 벌어야 하는 프로일 때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것 또는 열정을 가진 것을 직업으로 하게 되면 생활의 필수품인 “돈”과 멀어집니다. 생활이 궁핍해지고 쪼들리면, 내가 이러려고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나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열정은 고사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다른 일을 하고 싶을 겁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면, 이것은 적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목숨이 날라가도,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길을 가야만 하겠다는 신념의 문제입니다. 세속적으로 말해 직업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성취감이 큰 일”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돈은 돈대로 벌면서 취미로서 맘껏 즐기라고 말합니다. 열정은 성취감이 쌓이면 웅덩이에 물고기 모이듯이 저절로 생깁니다. 오로지 행위를 통해 이룬 것만이 자신을 증명합니다. 자기 안의 무엇에 의지하여 정체성을 찾는 것은 대개가 무의미합니다.
영화 “토탈리콜”의 한 장면. 기억을 잃은 주인공 퀘이드(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기억을 되찾기 위해 반란군의 현자 쿠아토를 만납니다.
“무얼 원하십니까, 퀘이드 씨?”
“당신과 마찬가지로, 기억하기를 원하오.”
“왜죠?”
“나 자신을 찾고 싶기 때문이오.”
“당신의 행위가 당신입니다. 인간은 기억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위에 의해서 정체성이 결정됩니다. You are what you do. A man is defined by his actions, not his memories.”
열정을 찾지 마시길. 열정은 행위가 쌓이면 저절로 스며드는 것일 뿐.
2017년 8월 16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