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더 많고 더 높고 더 크고 더 멀리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순위를 매기는 상대적인 기준으로. 그래서 “남들보다 더”입니다. 이 기준을 들이대면, “The Only One”이 될 때까지 성공이 아닙니다. 이런 성공을 꿈꾸지 말라는 책은 이제는 식상하리만치 널려 있습니다. 그런 것들 대신해서 이제는 자기만의 가치를 찾는 자기 성찰로 나아가라는 책들이.
인간은 놀랍게도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삽니다. 인간은 바깥 세상은 인식할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바깥 세상을 인식하는 자아와 그 인식하는 자아를 알아채는 자아. 어느 자아가 자기 자신일까요? 주체라고 부르는 자아는 어디에 있을까요?
인간은 홀로 존재해서는 자아를 인식할 수 없습니다. 자기만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자아가 정의될 때만 가능합니다. 인간은 상대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남들보다 더”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비교를 통해 자긍을 갖고 자만을 부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좌절을 하고 실망을 합니다. 이 양단을 모두 극복한답시고, 본래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자기만의 가치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올려다보기”를 그만 하기 위해 “내려다보기”를 하라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기만입니다. 올려다보면 항상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듯이, 내려다보면 항상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올려볼 사람의 극단은 “신”일 것이고, 내려다 볼 사람의 극단은 “지옥”에 들어 앉은 사람일 것입니다. “내려다보기”는 “나는 저렇게 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자기보다 못하다고 단정해버린 사람에 대한 폭력이고 무례입니다. 올려다보기를 따르는 탐욕과 내려다보기를 따르는 만족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동전의 양면입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고 동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진보가 아니고 진화이듯이, 사람의 삶은 오르내림이 아니라 자리변화입니다. 이 일을 하다가 저 일을 하는 것뿐이지, 높낮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화에 방향성이 없듯이, 인격에도 높낮이가 없습니다. 생명의 변화가 조건과 환경에 적응한 결과에 불과하듯이, 인격의 모습도 조건과 환경에 걸맞게 드러난 결과일 뿐입니다. 모든 가치 판단은 허상입니다.
역사가 극적인 우연의 향연이듯이 사람 사는 모습도 극적인 우연의 향연입니다. 자기가 놓인 자리에서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결정합니다. 존재가 자아를 결정하지 않고 관계가 자아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네트워크라고 합니다. 네트워크에서는 자신이 위치한 Node가 자아입니다. 설령 자아가 종말한다고 해도 네트워크에서는 의미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네트워크는 어느 Node가 손상을 받으면, 정보를 분산하거나 새로운 Node를 창발합니다. 본래 자아는 없는 것인데 네트워크에 의해서 형성된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의 나의 자아는 정보화본부장을 빌려서 잠시 형성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보화본부장”을 만나러 오는 것이지 자연인 “나”를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은 관계로부터 결정된 자아의 Node를 받아들이고 역할과 가치를 제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개인은 매 순간 네트워크라는 얽힌 관계에서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네트워크의 변화는 Node의 변화를 유발하고, 잠시 형성된 자아는 소멸하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합니다. 때로는 Node의 변화가 네트워크의 변화를 트리거링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모든 대립쌍은 본래 한 몸이어서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본래 불교 우화인데, 시인이 시로 바꾸었습니다.
행복과 불행
장미빛 꿈을 안고 한 청년이 "행복"이라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첫날 밤 신혼부부의 방에 어느 낯선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남자가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뉘신데 남의 방에 들어왔소."
"저는 '불행'이라는 여자입니다.
'행복'이라는 여자와는 한 몸이라서 일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남자가 소리쳤습니다.
"잔소리 말고 빨리 나가시오."
그러자 그 여자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가 이방을 나간다면 '행복'이라는 여자도 함께 나가야만 합니다."
김원각 / 시인
2017년 11월 20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