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을 보면, ‘유무상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깨달음이 이 짧은 말에 담겨져 있습니다. 유는 무가 존재함으로써만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무는 “없다”란 뜻도 아니고 “유가 아니다”란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Space란 뜻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생존하려면, 무엇인가를 이용해야 합니다. 그릇도 만들어야 하고 우물도 파야 합니다. 가만히 관찰해보면 유무상생의 이치를 여기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릇에서 정작 이용하는 것은 그릇 그 자체가 아니라 그릇이라는 형상이 만들어 놓은 공간이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우물에서 이용하는 것은 우물이라는 형상이 만들어 놓은 공간이라는 것을. 원래부터 존재했던 Space가 유가 있음으로써 이용할 수 있게 바뀌는 것입니다. 가치는 무에서 창출되는데, 무는 유가 있음으로써만 가치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이 관계를 김춘수 시인은 ‘꽃’이란 시를 통해 직관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의 그가 “무”라면, 불러준 다음의 그는 “꽃”이 됩니다. 불러주는 것이 “유”이고, “유”로 인하여 “무”가 “꽃”으로 바뀌면서 가치가 드러납니다.
주역에 “삼현일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세 개는 드러내고 한 개는 감춘다는 말입니다. 주역의 8괘 중에 위 아래를 뒤집으면 다른 괘로 바뀔 수 있는 괘가 있습니다. 이 대칭을 고려하면, 실제로 8괘 중에 6개만 쓸모가 있습니다. 8괘를 체(몸)라고 하고, 6개를 용(쓸모)이라고 합니다. 체의 3은 용하고 1은 감추어집니다.
만물은 1년 중 봄/여름/가을에 생하고 겨울에 쉽니다. 하루 24시간중 18시간은 깨어있고 6시간은 잠을 잡니다. 간장을 담가도 독에서 1/4은 자연 증발하고 남은 3/4을 씁니다. 와인을 오크통에 100을 넣어도 Angel’s Portion이라고 25%를 증발하고 남은 것을 씁니다. 모두 삼현일장입니다. 삼현일장이 가지는 의미의 핵심은 “일장”입니다. “일장”이 없으면 “삼현”도 의미가 없다는 뜻이지요. 쉼, 휴식, 놀이, 게임, 여행 등 디로딩이 없으면, 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일년의 1/4은 확실히 디로딩해야 한다는 이치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 휴일이 있는 여유, 장기휴가가 있는 인생” 이 Catch Phrase는 “무”의 가치를 재발견하면서 탄생한 것입니다.
2017년 12월 14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