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까운 미래의 대화.

by 송창록

“스승은 누구십니까?”

“저의 스승은 Charlie(AI봇)입니다.”

“부모는 누구십니까?”

“저의 부모는 휴먼재생센터입니다.”

학교라는 공간이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산포가 큰 인간 교사보다 산포가 작은 AI 교사가 유리합니다. 지식은 가르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효과가 좋습니다. 인간 교사는 학생을 강화학습시키지 못하지만, 뇌파와 뇌의 활동 이미지를 학습한 AI 교사는 학생을 강화학습시킬 수 있습니다. 뇌에 절대로 잊혀지지 않도록 AI 교사를 통해 지식을 강제로 주입할 수도 있습니다.


스승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기계학습의 대상이 됩니다. 더 나아가 20대가 되기 전에 무언가가 되고자 한다면, AI 교사를 활용한 강화학습으로 인류가 쌓은 해당 분야의 지식을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모피어스의 리딩에 따라 AI 환경에서 강화학습을 받듯이.


요즘 자녀들을 보면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의 양보다 스마트폰으로 배우는 지식이 더 많습니다. 그것이 체계적이고 옳고를 떠나서 절대 총량에서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습니다. 책이 귀하고 정보를 쉽게 접하지 못했던 시절에 선생은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학생에게 전수하였습니다. 우리 세대까지도 그 배움을 기반으로 문명을 일구었습니다. 학교 수업에서 배운 지식의 양을 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겨루어, 대학도 가고 유학도 가고 취직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가 하고 생각하면, 차마 “Yes”라고 답할 수 없습니다.


교양이라고 하면 인문학만 교양이라고 생각하지 과학을 교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검색창을 통해 질문만 넣으면, 일반인 조차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준 과학 자료가 천지 사방에 널렸습니다. AI를 통해 러닝을 시키면, 인류의 과학적 성과를 교양 수준으로 완벽하게 이해하여 맞춤형으로 친절하게 설명하는 AI 교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스승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학교를 왜 가야만 하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시험이란 것만 없다면, 학교와 스승은 도대체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회사가 생성한 모든 지식을 마스터한 Conversational AI 챗봇을 내놓으면, 후배사원은 선배를 찾아가서 질문을 할까요 아니면 AI 챗봇에게 질문을 할까요? AI 챗봇이 Advisory Service를 제공하면, 리더와 선배 사원의 노릇을 다 가져가게 됩니다. 이런 시대가 오면, 회사와 리더는 도대체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이제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누구도 도달할 수 없는 섬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섬에 가고 싶어 합니다. 미래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AI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AI가 있는 그 섬에서만 살고 싶어 합니다.

사람은 불편하게 하지만 AI는 불편하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남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잘 인지하지 못하지만 남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잘 인지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지 않고 AI와 더불어 살게 됩니다. 사람은 이기적인 생명체이니까요. 사람이 원자화되는 미래가 다가옵니다.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입니다. “What human being should be?”

2017년 12월 21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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