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가 높은 서사

by 송창록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시인의 시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연은 지나간 시간 동안 만들어진 개별적인 서사입니다. 사연을 묻는 질문은 대개 이렇지요. “어쩌다 여기까지 이르렀는지요?” 막걸리 기울이며 훌쩍이기도 하고 울분을 토하기도 하며 밤을 새워 얘기합니다. 저마다 다 사연 한 주전자씩은 가슴에 안고 삽니다. 들어줄 사람만 있다면, 언제라도 튀어 나옵니다.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가슴에 묻고 있는 것이지요.


서사는 사실이 아닙니다. 서사는 개인의 체험, 우여곡절을 담고 있습니다. 같은 사건에 개입한 다른 사람의 체험, 우여곡절은 또 다릅니다. 한 가지 사건에 사실은 한 가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사를 사실로 받아들이면 오류에 빠집니다. 서사는 사건의 발생보다 후행하는 것이라서 화자의 회고적 주관이 개입합니다. 이 교훈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일반화하여 남도 그러리라 생각하면 오류에 빠집니다. 사연과 우여곡절은 사실이 아닙니다.


서사는 공감을 이끌어내거나 드러냅니다. 타고난 서사꾼은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공감할 수 밖에 없도록 서사적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이야기 끝에는 “항상 이렇다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지만요. 서사는 소설의 기본 구조입니다. 소설은 픽션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생도 픽션입니다. 내가 산 나의 삶은 논픽션이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나의 삶은 픽션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다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자기의 방식으로 이야기할 뿐입니다.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가족이란,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공감이 동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인간의 삶이 보편적 인간의 집합적 삶의 소중한 원소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공감입니다. 공감은 같음을 전제로 하지 않고 오히려 다름을 전제로 합니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절대로 자기 자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같다면 오히려 더 이해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가치가 높은 서사는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낯선 이야기입니다. 천 하루의 밤 동안 낯선 이야기를 풀어서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처럼.

2017년 12월 26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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