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8단계입니다.
긍정의 발달과 부정의 발달을 함께 비교해 놓았습니다. 7번째 단계는 80살을 산다면 40살을 넘을 때 부터이고, 100살을 산다면 50살을 넘을 때 부터입니다. 이 7단계가 길어지면 어떤 형태의 중년이 사회에 많은가에 따라 사회의 생기가 달라집니다. 그 만큼 중년이 중요합니다. 해가 천정을 지나 기우는 중년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이타심은 갈증과 같은 것입니다. 인생이 석양으로 저물기 시작하는데, 부모와 자식을 공양하다 스스로 무엇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조급함과 간절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스물스물 살갗을 뚫고 나옵니다. 마음이 급합니다.
중년 이후의 삶이 짧았을 때는 부모와 자식 공양이 전부였겠지요. 자식이 독립하고 부모가 돌아가시면 바로 이제 자기 자신이 이승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무려 20년 아니 30년, 40년의 시간이 더 자신의 인생에 주어져 있습니다. 건강하기만 하다면, 올곧게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보석 같은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의 생물학적 성취가 아닌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자기가 직접 성취하는 것보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후배들의 감사를 받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때 자기가 물려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면 침체에 빠집니다. 부모가 이 시간을 손자/손녀를 키워주는데 다 쓰고 있다면, 자식들은 사실 엄청난 불효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는 ‘회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쌓은 선근(善根:좋은 과보를 얻을 훌륭한 因) ·공덕(功德:좋은 일을 쌓은 공과 불도를 수행한 덕)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어 자타가 함께 불과의 성취를 기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법회, 독경, 염불, 보시 등이 회향의 예입니다. 불교에서 보시는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의미를 담는 회향 행위입니다. 나이가 들어 회향하지 않고 자기 안에 담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옛날 인도에서는 자식이 다 커서 성인이 되면 부모가 집을 나가 숲에 있는 사원에서 수행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 또한 중년이 된 이후에 생물학적 삶을 떠나 종교적 삶을 추구하는 회향입니다.
은하철도999(Galaxy Express 999)를 기억합니다. 철이가 메텔을 만나 은하철도999를 타고 기계몸을 공짜로 주는 기계제국의 모성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마쓰모토 레이지의 만화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지요. 철이는 우여곡절 끝에 기계제국의 모성에 도착하지만, 감정이 없는 기계인간으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기를 원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한 개체로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생명활동의 잇닿음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철이는 기계제국 모성을 파괴하고 다시 999호를 타고 지구로 떠납니다. 철이 엄마의 몸을 클론으로 받아 몸을 바꿔가며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메텔은 마지막에 철이와 헤어지며 이렇게 말합니다. "안녕,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의 꿈에 있는 청춘의 환영일 뿐이야..." 이렇게 철이는 그의 소년시절을 마감합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소멸합니다. 소멸하지 않는 것은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습니다. 해가 천정에 오를 때까지 소멸하는 것을 추구했다면, 해가 천정에서 내려오는 동안에는 소멸하지 않는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식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부모의 회향을 돕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2017년 12월 29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