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철학사에 매우 파격적인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니체가 말한 ‘초인’에 대해 이해해야 맥락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니체는 엉뚱하게도 인간의 삶과 죽음을 반복된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이번 삶의 이 찰나는 지난번 삶의 찰나와 같습니다. 인간은 매번 죽지만, 영원히 항상 같은 찰나를 삽니다. 니체는 이를 “영원회귀”라고 합니다. 삶은 유한하지만, 순간은 영원합니다. 초인은 이 순간의 영원함을 알아차린 사람입니다.
잠에서 깨기만 하면 매일 특정 날짜를 반복하여 사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는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바꾸려고 해도 실패하고 계속 같은 장면이 날마다 반복됩니다. 이 영원회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영원회귀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고통과 죽음마저도.
실제로 인간의 삶이 이러하다고 니체가 증명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니체는 ‘영원회귀’와 ‘초인’을 선언한 것입니다. 기존 관념을 대상으로 허구적인 대립각을 세우고 반발한 것이지요. 어차피 증명되지 못할 허깨비와 같은 말놀음에 동일한 수준의 말놀음으로 엿 먹인 겁니다. 인간의 삶이 영원회귀이면, 우주의 진화, 자연의 진화, 문명의 발전도 영원회귀입니다. 영원회귀는 말장난입니다. 그 말장난에는 기존 관념에 대한 대립 관념이 담겨 있습니다. 소중한 것은 맥락적 이해입니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 발달에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첫째는 낙타의 단계입니다. 낙타는 참을성이 많고 주인에게 절대 복종합니다. 주어진 일에서 숙명적으로 일하며 복종하는 정신을 가지고 권력의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갑니다. 두번째는 사자의 단계입니다. 사자는 자유의 정신, 부정의 정신입니다. 사자는 혁명가입니다. 낙타 단계에 머물렀던 그는 비로소 “No”라고 외칩니다. 자유의지를 향한 의지를 갖고 있고, 새로운 가치를 위한 권리를 찾습니다. 원죄, 관습, 규범에서 과감하게 도전합니다. 세번째는 아이의 단계입니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으로 인해 때묻지 않고 편가르지 않습니다. 아이는 잘 잊어버립니다. 아이는 놀이적인 인간입니다.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고, 아이처럼 삽니다.
니체는 아이의 정신을 인간 정신의 최고 단계라고 봅니다. 우리는 언제쯤 아이의 정신으로 돌아갈까요. 바로 죽음을 마주한 순간입니다. 영원회귀하니까요.
그래서 날마다 죽습니다. 날마다 죽는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아이처럼 날마다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입니다. 비록 삶이 유한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영원하니까. 자기 자신이 살아낸 한 순간 마다 우주의 한 순간으로 영원할 것이므로.
2017년 9월 8일 사람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