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의 한 임원이 계속 승진에서 떨어집니다. 이 임원은 CEO께 그 사유를 묻습니다. 이렇게 답이 옵니다. “당신은 청소부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 어느 글에서 -
불교에는 하심(下心)이 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하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나 명상 같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마음으로 들어오는 번뇌를 다스리는 것이 하심입니다. 번뇌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입니다. 이 세가지를 마음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 하심입니다.
절은 하심의 발로입니다.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형상인 불상에 절하는 것은 본래 의미가 아닙니다. 소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절하는 것은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하게 해달라고 장독대에 정안수 떠다 놓고 연신 손바닥을 비비는 월매의 행위와 같습니다. 절은 마음에 침범하는 번뇌를 이기거나 잘못을 참회하기 위해 하는 자기 수행입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다른 삶을 삽니다. 직위와 직급은 일의 성격에 부여된 이름이고 거기에 맞게 권한과 책임이 부여됩니다. 권한과 책임은 위계 관계와는 달리 일의 성격과 가치에 종속된 속성입니다. 자리와 자리의 관계이지 그 자리에 임명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닙니다. 내가 ‘정보화’담당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정보화’담당이 나를 빌려서 삽니다. 사람이라는 미디어를 두고 자리와 일이 상호작용하는 것이 일터입니다. 나를 만나러 회사를 찾아오는 사람은 자연인인 나를 만나지 않고 ‘정보화’담당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자리를 인격과 동일시하는 순간, 위계에 의한 인격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심이나 겸손은 껍데기에 불과한 덧씌워진 모습들을 벗겨내고 인격으로 돌아가는 마음가짐입니다. 부처님 앞에서 모두 중생이듯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이듯이, 생물학적으로 모두 유전자의 노예이듯이. 인간 하나하나가 나와 다르게 살고 있을 뿐, 인격적으로 동등한 개별 개체라는 것을 섬세하게 지각합니다.
‘맥락을 이해한다’와 ‘본질을 이해한다’는 다릅니다. 같은 말 또는 같은 상황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내포합니다. 누군가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맥락을 이해하여 허깨비를 걷어내고 본질을 섬세하게 지각한다는 뜻입니다. Virtual Reality가 섬세하지 않으면, ‘조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직행합니다. 내가 아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착각, ‘확증편향’에도 빠집니다.
매우 우수한 커리어를 가진 임원 영입 후보가 인터뷰를 받으러 CEO실에 들어갔습니다. CEO가 질문을 합니다. “길거리 벤치에, 요에 쌓인 젖먹이 아기가 혼자서 울고 있습니다. 당신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임원 후보가 답을 합니다. “119에 신고하겠습니다.” CEO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합니다. “그렇지요. 중요하지요. 그런데 품에 안아서 먼저 아이를 달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 어느 글에서 -
이 임원 후보는 그 회사에 입사했을까요?
2018년 4월 6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