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씨는 정말 단단합니다. 망치로 때려도 잘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합니다. 대추씨는 사람이 이로 물어서 깨뜨리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렇게 단단한 대추씨도 흙에 심으면 단단한 껍질을 뚫고 순이 올라와서 무럭무럭 자라 대추나무가 됩니다. 습기를 품은 적당한 흙이 있으면 씨눈에서 배아가 자라면서 뿌리를 내립니다. 뿌리를 내려 땅을 딛고 서지 못하면, 배아는 배아로 생을 마감합니다. 단단한 껍질은 안에 들은 씨눈을 보호하는 보호막입니다. 보호막이 아무 때나 열리면, 생명은 성장하지 못하고 죽습니다.
홀로서기는 절대로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단단한 보호막에 싸인 대추 씨눈이 대추나무로 홀로서기 위해서 흙이 있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인은 과를 맺어야 하는 주체이므로 자기 자신입니다. 연은 인에 작용하여 도와주기도 하고 해하기도 하는 Everything입니다. 아무리 좋은 인도 연을 잘못 만나면 홀로서지 못하고 죽습니다. 불법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연에서 불법의 이치를 헤아립니다. 불법은 자연법입니다.
인간이 태어나 아이를 지나 어른으로 잘 성장하려면 부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녀/제자/어린이/구성원이 인이라면, 부모/스승/어른/리더가 연이 됩니다.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부모는 좋은 자녀가 만들고, 좋은 스승은 좋은 제자가 만들고, 좋은 어른은 좋은 어린이가 만들고, 좋은 리더는 좋은 구성원이 만듭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인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자기 자신이 누군가의 연이라는 건 잘 알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전제하는 대립쌍은 단단한 인연입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올 때는 사력을 다해서 껍질을 쫍니다. 이미 알 속의 노른자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이기 때문에 알을 깨고 나가지 못하면 죽습니다. 알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알 속에서 죽은 병아리를 어린 시절에 보았습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습니다.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일을 깨뜨리는 것을 탁이라 합니다. 이 둘이 동시에 행해져야지 병아리가 알을 잘 깨고 나옵니다. 師弟之間(사제지간)이 될 緣分(연분)이 서로 무르익었을 때의 비유로 쓰입니다. 병아리가 홀로 설 수 있도록 밖에서 연이 되어주는 마음, 그 마음이 줄탁동시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연이 되기를 바란다면, 먼저 내가 누군가의 연이 되어줄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든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랩 걸》 호프 자런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위대한 씨앗들에게 연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2018년 4월 10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