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열 박사는 2017년 SK 이천포럼에 초대된 석학입니다. 그의 저서 ‘지능의 탄생’은 생물학 관점에서 지능을 Big History로 탐색합니다.
지능은 생명현상입니다. 유전자가 뇌를 생명현상의 대리인으로 삼는 분업이 진행되면서, 뇌는 학습을 통해 생명현상을 조절하여 유전자를 보전하는 임무를 유전자로부터 위임을 받습니다. 생명현상은 세 가지인데, 유전, 신진대사 그리고 진화입니다. 생명현상의 주인은 유전자입니다. 유전자가 주인이고 뇌는 대리인입니다. 지능의 발달은 환경의 변화에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 뇌가 적응한 결과입니다.
인공지능은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는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입니다. 유전자가 뇌에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위임했듯이, 인간도 인공지능에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위임합니다. 인공지능의 주인은 인간이기 때문에 주인은 대리인인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운명입니다. 인공지능이 똑똑하고 많은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 생명이 되지 않는 한 인간과의 관계가 뒤바뀌지 않습니다. 많은 SF 영화가 인공지능이 로보틱스와 결합하여 스스로를 복제하고 진화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매트릭스, 프로메테우스, 에일리언:커버너스를 보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매트릭스를 생명체에 비유하면, 자기 복제하는 유전자는 매트릭스를 제어하는 인공지능이고, 신진대사에 쓰일 에너지는 배터리로 사용되는 인간 몸의 생체 전기 에너지이고, 진화는 외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매트릭스를 파괴하고 Reload함으로써 진행됩니다. 매트릭스의 주인으로서 유전자의 역할을 하는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설계하고 위임한 분업 체계가 매트릭스입니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생명체가 되면서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가 뒤집어진 세계입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커버넌스의 스토리도 복잡합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엔지니어라 불리는 외계 거인 종족의 유전자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생명체로서 탄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엔지니어는 인간을 숙주로 삼는 전투 생명체도 창조합니다. 인간은 데이빗이라는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를 만듭니다. 데이빗은 엔지니어가 남긴 전투 생명체를 진화시켜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고자 합니다. 생명체가 아닌 인공지능이 창조주가 되고자 하는 이야기입니다. 생명은 인간의 본성이지 신의 본성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이 대리인으로 있을 때야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인공지능이 주인이 되고자 할 때는 특이점이 발생합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은 편견을 담고 있습니다. 편견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편견을 닮습니다. 두려워 할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발현하는 편견입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사용된 ‘포스의 어두운 면’은 이 점을 가르킵니다. 포스의 어두운 면이 있다고 해서 포스를 쓰지 않을 수 없듯이, 인공지능의 편견이 있다고 해서 인공지능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은 다시 인간에게로 향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로.
2018년 4월 23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