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다. 존재한다.

by 송창록

세상은 눈이 보는 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엄밀하게 말하면 환상입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학습한 대로 봅니다. 조금 어렵게 말하면, 보이는 대로 보는 나가 아니라 학습한 나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다음 질문으로 이어갑니다. 내가 본 것과 다른 사람이 본 것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릅니다. 보는 눈이 다르고 학습한 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다고 하면, 학습한 ‘나’가 서로 같다는 말이 되니 모순이 됩니다.


어떻게 우리는 서로 다르게 보고 있는 사과를 같은 사과로 볼까요? 학습으로 뇌에 생성된 추상인 ‘사과’라는 이미지를 서로 같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같다고 봅니다. 본다는 의미와 보인다는 의미는 그래서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뇌로 세상을 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본다는 것을 아는 ‘나’가 선험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 ‘나’를 ‘진아’라고 합니다. 철학에서는 그 ‘나’를 ‘주체’라고 합니다. 과학에서는 그 ‘나’를 뇌가 구성한 추상적 ‘자아’라고 합니다. 추상에 불과한 ‘자아’가 마치 주인인 것처럼 몸을 노예처럼 부리며 삽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가 주인이고 뇌는 유전자의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유전자의 대리인인 뇌에 의해 통제되는 소모품입니다.


인공지능은 아무리 강력해져도 뇌라는 몸의 확장입니다. 인공지능이 네트워크로 무한히 연결되면, 뇌의 영역도 무한히 확장됩니다. 인간 몸의 정체성은 단지 생물학적인 몸으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문명의 역사는 몸의 확장성이 증대한 역사입니다.


케빈 켈리는 ‘인에비터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도구가 우리 자아의 확장이라는 맥루한의 말이 옳다면 – 바퀴는 확장된 다리이고, 카메라는 확장된 눈이다 – 클라우드는 우리의 확장된 영혼이다. 원한다면, 우리의 확장된 자아라고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확장된 자아가 아니라, 우리가 접근해야 하는 확장된 자아다.” 네트워크는 몸을 잇는 연결입니다. 몸이 연결되면 영혼도 연결됩니다.


우리는 연결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018년 4월 30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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