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토론방의 역설

by 송창록

Google의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의 결론. 가장 성과가 높은 팀은 “Psychological Safety”가 있는 팀입니다. 구성원이 심리적으로 ‘안전감’을 가져야 한답니다. 자신이 반대 의견을 내도, 설령 실패하더라도, ‘안전하다’라는 심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게 하루 이틀 만에 될까요? 리더라는 저 인간이 지난 시간 살아온 이력이 있고, 누구나 다 그 성깔을 알고 있는데요. 모든 구성원은 리더를 신뢰하는 만큼만 일하고 딱 그 만큼만 성과를 냅니다. 구성원 성과의 크기는 리더가 구성원으로부터 받는 신뢰도의 크기입니다.


익명 게시판을 만드는 이유는 이 ‘심리적 안전감’을 익명성 뒤에 마련해주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누구나 익명이면 하고 싶은 말을 잘 하니까요. 여기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Social Media에서 많이 경험해보겠지만, 토론을 학습하지 않은 구성원은 토론의 흐름을 끊습니다. 익명성은 파토내기에도 좋은 기제입니다. 익명성은 메신저를 가렸기 때문에 메시지에 대한 비판만 해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주체의 은밀성은 메신저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일으킵니다. 메시지를 비판해야 하는데, 메신저를 비난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익명이라는 조건에서는 아무 주제나 막 다루면 파탄납니다. 익명 게시판은 명과 암이 공존합니다.


회사는 자기 이름으로 자기가 성과를 내고 기여한 만큼 갖고 가는 투명성을 추구합니다. (추구한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익명성은 부득이 도입되는 보조 수단입니다. 익명성에 과도하게 기대면 회사의 본질을 흐릴 수 있습니다. 의견은 패거리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익명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립각이 형성됩니다. 토론은 이 대립각을 조정하여 양보할 것 양보하고 이해할 것 이해한 결과로 타협점을 찾는 과정입니다. 익명성의 토론에도 토론을 이끄는 Moderator가 있어야 합니다. Moderator 없이 댓글만 있으면 의견을 배설하는 장소가 됩니다. 익명 게시판의 한계입니다. 대부분 익명 토론방은 익명 게시판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익명성을 보장하되, 주제가 본질적이면서 중요해야 하고, 토론을 요청한 Moderator가 존재하는 경우가 좋은 익명 토론방입니다. 토론을 요청한 사람이 익명 토론을 Moderate할 역량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개인이 예의를 지키면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가 사실 어렵습니다. 개인이 살아온 사회 문화가 고스란히 토론 과정에 배여 나옵니다. 익명 토론방에서는 Naked하게 드러납니다. 익명에 숨으면, 역설적으로 메시지가 보이지 않고 메신저가 도드라집니다. 지킬이 아니고 하이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2018년 3월 9일 사람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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