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수학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수학의 정의와 그룹에 비유되는 것이 인문학의 개념과 범주입니다. 수학에서 앞선 단계 수학 지식이 다음 단계 수학에 밑거름이 되듯이, 인문학에서도 앞선 단계 인문학 지식이 다음 단계 인문학에 밑거름이 됩니다. 수학이나 인문학이나 논리가 바탕이기 때문에 어렵긴 매한가지입니다. 일상에서 쓰는 언어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언어체계를 배우는 학문입니다.
언어에 관한 스토리에 Text가 될만한 영화가 ‘컨택트(원작 제목 Arrival)’입니다. 영화에서 다리가 7개인 헵타포드의 문자는 시작과 끝이 만나는 원형입니다. 헵타포드 그 자체도 위에서 보면 둥근 모양입니다. 헵타포드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시작과 끝이 만나듯 존재합니다. 헵타포드는 미래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섞이는 체험을 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체험입니다. 체험을 통해 헵타포드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이미 존재하는 미래와 행동하는 현재를 연결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보아버린 루이스는 ‘비극적인 끝을 알면서도 시작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마치 일본/한국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스토리처럼.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규정한다고 최초로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는 사피어와 워프입니다. 언어란 사상이나 경험을 전달하는 상징적 도구일 뿐 아니라 언어 자체가 인간에게 작용합니다. 언어는 무의식 속에 투사된 내적 세계를 경험의 세계로 끌어올려 실제적 경험을 규정합니다.
이 경험의 극적인 예가 바로 시간에 대한 관념입니다. 유럽인에게 시간은 객관이기 때문에 아침, 저녁, 1월, 8월, 여름, 가을 등이 분명합니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도 분명합니다. 아메리카 호피족에게는 시간이 객관이 아니고 관습입니다. 시간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관념은 언어로 표현되고 언어가 달라지면 관념이 달라집니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헵파포드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시간체험이 달라집니다.
모든 개인은 저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다른 언어를 맥락을 통해 같은 의미로 인식하는 과정을 공감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언어학 관점에서 공감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타인의 관념을 내 안에 들여 놓는 것이므로, 비극적인 끝을 보아버린 언어학자 루이스와 같은 수준의 체험입니다.
자신을 죽일 것을 알면서도 유다에게 포도주를 따라주고 축복하신 예수님. 독이 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춘다의 공양을 받은 석가모니 부처님. 두 성인에게 있어서도 시간은 흐르지 않고 존재합니다. 어떻게 끝날 지 알고서도 그대로 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끝이 비극이란 걸 알고도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2018년 5월 2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