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곧 정체성

by 송창록

얼마 전에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인류를 인류이게끔 한 3가지가 있다고 잡설을 늘어 놓았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읽었던 것들을 발췌하여 스토리로 엮었습니다. (1) 잔머리, (2) 뒷담화, (3)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는 것.


잔머리는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트릭을 만들어내는 두뇌활동입니다. 어쩌면 인간의 이기심은 모두 잔머리에서 나온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틀면 나에게 유리하게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뒷담화는 인류의 언어가 발달한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두뇌활동입니다. 인류는 어느 순간 권력자와 피권력자로 나뉘었습니다. 피권력자가 권력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뒷담화입니다. 앞에서는 충성하는 척해도 뒤에서는 지속적으로 배신과 역성혁명을 꿈꿉니다. 모든 인류의 혁명은 뒷담화를 거쳐서 발현되며 촉진되었다는 설이 뒷담화설입니다. 인류가 이룩한 소통의 근원을 뒷담화라고 주장합니다. 리더라면 구성원이 하는 뒷담화에 기꺼이 재료가 되어줄 수 있어야 구성원을 향한 인류애를 발휘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믿는 것은 고도의 추상입니다. 회사, 국가, 은행, 종교, 화폐 등은 모두 실체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무형을 유형으로 믿고 인류는 그 추상에 경배하고 존중하고 의지합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이기심 그리고 배신과 더불어 공동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공동체는 무형의 가치를 실존한다고 믿는 인류 집단입니다. 이기심과 배신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고 붕괴되더라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인류 진화와 함께 추상된 것이기 때문에 공동체도 진화합니다. 어느 한 믿음을 가진 공동체가 절대선이 될 수도 없고 절대악이 될 수도 없습니다. 공동체 또한 인류 다양성 만큼이나 One of Them일 뿐입니다. 인류는 공동체 다양성에 대한 존중 의식이 없습니다. 약탈과 전쟁과 파괴가 일어납니다. 폐허 위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진화합니다. 멸종은 다양성을 향한 진화의 한 방법입니다. 힌두교는 멸종을 신의 한 형태인 시바로 표현합니다.


지금 인류는 지구 공동체 단계로 진화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히 낮아진, 인류사적으로는 유래가 없는 절대 평화 시기입니다.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에 사는 인류는 거의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되었습니다. 무형에 힘입어 Centralized한 인류가 유형에 힘입어 Decentralized합니다. 반면 네트워크 안에서는 자유로운 인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다시 Centralized한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수련과 수행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수련이라면, 해야만 할 것을 반드시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칠불통계가 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포함한 과거 일곱 명의 부처님이 공통적으로 가르친 가르침입니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뜻을 맑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여기서, 제악막작이 수련이고 중선봉행이 수행입니다. 생각이 정체성을 만드는 게 아니라 행위가 정체성을 만듭니다.


종교에서 기도는 ‘참회’와 ‘감사’를 의미합니다. 악행을 저지른 것에 참회하고 선행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게 기도입니다. 뭘 이루게 해달라고 비는 것은 기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래 또는 교환이라고 불립니다. 조금 바치고서 많이 바라는, 욕심이 부르는, 종교를 빙자한 자해행위입니다.

2018년 7월 23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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