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즐거움을 쫓습니다.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다른 즐거움을 찾습니다. 역시 오래가지 않습니다. 즐거움을 다른 단어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 사랑, 열정, 감사, Whatever. 어릴 때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 생명을 건졌습니다. 감사함을 항상 기억하여, 틈만 나면 찾아가서 감사의 예를 그치지 않는 삶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은 모든 것이 어딘가에서 그칠 것임을 압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이며 강점이고 약점인 것을 압니다. 알기 때문에 항상 적당히 비겁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의 비겁은 저울에 단 무게 만큼 가볍게 느껴집니다. 잘못이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르게 살지 않고 남들과 같은 방법으로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평균적 삶을 사는 즐거움이랄까요. 그런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다르게 사는 방법은 다음 세 단어가 갖고 있습니다. 소명, 사명 그리고 숙명. 소명은 부름을 받는 것이고, 사명은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숙명은 주를 나로부터 분리하지 않는 겁니다. 크리스찬 공동체는 이 세 단어에 의해 유지되어야 영적 공동체가 됩니다. 크리스찬 공동체가 이 세 단어 대신에 다른 단어에 의해 지배될 때 공동체는 타락합니다. 주의 지배는 사라지고, 주의 종인 제사장이 지배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이제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합니다. 주의 종에게는 천국의 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자가 다르게 사는 방법은 다음 세 단어가 갖고 있습니다. 소원, 발원 그리고 원력. 소원은 Outside-In이고, 발원은 Inside-Out이며, 원력은 All-in-One입니다. 불교는 신을 인간의 한 형태로 간주하므로, 인간 밖에 없습니다. 소원은 받고자 하는 거고, 발원은 하고자 하는 것이며, 원력은 모든 중생이 성불하는데 자기를 바치는 겁니다. 불자의 공동체는 원력의 단계에서 중생이 성불하기 위한 깨우침을 배우는 학당이 되어야 영적 공동체가 됩니다. 원력이 사라진 자리에 소원만 남으면, 허상뿐인 불상을 앞에 놓고 복을 바라는 공동체가 타락합니다.
Work-and-Life Balance는 평균적 삶이 아닙니다. 일도 미친듯이 잘 하고 가족 그리고 개인의 휴식도 미친듯이 잘 하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평균선이 있다는 것이지, 배분을 기계적으로 똑같이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일과 삶에는 사명이 있고 발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나와 분리되지 않으면 숙명이 되고 원력이 됩니다. 워라밸은 일과 삶의 균형이 아니라 일과 삶의 All-in-One입니다.
삶의 목표와 삶의 목적은 다른 말입니다. 목표는 What을 묻는 질문이고, 목적은 Why를 묻는 질문입니다. 삶의 목표는 도달할 지점을 말합니다. 목표를 추구하는 삶은 그 지점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갑니다. 삶의 목적은 지금 살고 있는 이유를 묻습니다. 목적이 목표로 대체된다면, 바로 지금 왜 살고 있고 왜 일하고 있는가에 답할 수가 없습니다.
정보화담당이 나를 살면, 이것은 정보화담당이 주인이고 내가 노예입니다. 내가 정보화담당을 살면, 이것은 내가 주인이고 정보화담당이 노예가 됩니다. 나는 왜 정보화담당으로서 사는 것인가? 이것이 삶에 대한 질문입니다. 정보화담당은 왜 나로서 일하는가? 이것이 일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을 All-in-One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2018년 7월 31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