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vs. 제자

by 송창록

영화 ‘Pride and Prejudice(오만과 편견)’. 원작보다 영화를 먼저 보았는데, Kiera Christina Knightley(키이라 나이틀리)라는 독특한 매력의 여배우만 기억나더라는. 물론 ‘캐리비언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에 나올 때도 느꼈지만. 그리 이쁘지 않은데, 키스하는 도중에 입술을 물어뜯는 팜므파탈의 매력이랄까.


사람은 오만과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만은 자기 우위라는 자만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감정입니다. 편견은 세상을 자기 중심적인 견해로 받아들이고 편집하는 관점입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고, 절대로 거사를 함께 도모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역지사지가 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록 수많은 책에서 인용하고 있지만, 상대방의 처지에서 볼 방법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에 불가능한 말입니다. 마리 앙뚜아네트는 천지사방에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이름으로.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미리엘 신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만과 편견이 지배하는 현실은 내가 남보다 더 높은 자리에 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제공합니다. 악마를 이기기 위해 더 잔인한 악마가 되어야 합니다. 그 끝이 아마게돈인 걸 알면서도, Force의 Dark Side가 인도하는 길입니다.


사회는 인간의 사회성에 기반하여 파괴적인 개인의 악마성을 제어합니다. 오만한 다아시나 편견을 가진 엘리자베스는 왕따가 됩니다. 준거 집단에서의 다름은 차별을 받습니다. 한 사회를 지탱하는 차별을 견디지 못하면 다름은 그 사회에서 제거됩니다.


개인의 오만과 편견은 사회의 오만과 편견보다 미약합니다. 전체가 개인으로 환원되지 않듯이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사회를 바꾸려는 개인은 낮은 데로 내려올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처럼, 그리고 싯다르타처럼. 낮은 데로 내려오면 더 이상 오만과 편견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어로만 세상을 봅니다. 머리속에 지식만 가득합니다. 심하면 ‘공부중독’에 걸립니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한들 뭔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리하는 칼도 살인자가 들면 살인 도구에 불과한 것을.


조훈현 선생께서 쓰신 [고수의 생각법]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비인부전 부재승덕(非人不傳 不才勝德) “인간이 덜 된 이에게 기술이나 학문, 벼슬을 주지 말고, 재주나 학식이 덕을 넘게 하지 말라.” 품격은 가르쳐서 되지 않습니다. 먼저 인간이 된 사람을 쓰라는 뜻입니다. “Attitude를 고용해서 Skill을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근본이 되어먹지 않은 이를 리더로 쓰면, 구성원에게 재앙입니다.


자기가 남들보다 낫다구요? 그건 자기만의 생각이지요. ‘저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정말 우수하다’라고 계층에 관계없이 이구동성으로 추천하는 사람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오만과 편견’을 가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온 시간의 무게감을 가진 사람입니다. “복숭아와 배는 꽃과 열매가 있다. 그래서 오라 하지 않아도 다투어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러니 그 아래 길이 생기지 않겠느냐?” 멘티가 품격이 높으면, 멘토는 때가 되면 저절로 생깁니다. 멘티의 자질이 되어먹지 않았다면, 멘토는 멘티를 버립니다.


스승이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이지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2018년 8월 13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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