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이 법령으로 시행된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와 함께 유연 근무제가 시행되었습니다. 많이들 익숙해지셨을 겁니다.
2016년 DRAM공정개발그룹장할 때 조직문화혁신위원회를 만들고 유연근무제를 검토하자고 했습니다. 그 해 11월 작성된 보고서를 보면, 응답 구성원 95명 중 54%가 지금의 유연근무제를 선호했습니다. 유연근무제로 인한 장점과 단점도 지금 논의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만이라도 먼저 시행하자고 HR에 제안하려고 했던 것인데, 제가 호적이 아예 파이면서 유야무야 되었습니다. 그것이 2년도 되지 않아 전면 시행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자본주의에서 노동은 시간을 화폐로 교환하는 행위입니다. 시간당 임금이 매우 중요한 Factor입니다. 돈을 벌려면, 임금으로 교환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잔업, 철야, 특근을 밥 먹듯이 해야 합니다.
그 결과 하나의 Rigid한 생각 Frame이 생깁니다. 시간을 항상 돈으로 등치합니다. 돈이 되지 않는 시간을 낭비입니다. 집에 일찍 가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회사에 남아 늦게 까지 돈을 버는 것이 더 가치가 높다고 판단합니다. 은연 중에 이 생각 Frame은 가족을 전염시킵니다. 집은 하숙집이요 가족에게 아빠란 몸을 팔아 돈을 딜리버리하는 생체로봇입니다. 이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내가 그렇게 살았으니 너희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진짜 꼰대입니다.
당연함을 당연함이 아니라고 각성하는 시간이 늦으면 늦을수록, 시스템 혁신을 일으켜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Golden Time을 놓칩니다. 지금 그 현실이 대한민국 제조업에서 발생합니다. 시스템의 과잉이 시스템의 진화를 저해합니다. 복잡성을 시스템의 추가로 개선하는 습관이 반복되면서, 예측하지 못한 복잡성이 오히려 더 증가합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 답은 현장에 있다고 말하면 패가망신합니다. 복잡성이 보이지도 않고 다루지도 못하는 현업은 근본 문제가 아니라 당장의 결핍을 호소합니다. 결핍은 시스템의 추가로 해소되며, 시스템의 추가는 새로운 결핍을 낳습니다.
화폐로 교환되는 시간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Bias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 52시간만 일해야 한다면, 경영진은 비록 사람이 적은 시간 동안 일해도 사업이 잘 되도록 시스템 혁신에 집중합니다.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시간, 휴식, 쉼, 놀이, 게임이 창의성의 원천입니다. 화폐로 교환되는 시간에 열심히 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시간은 자기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일사생’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18년 9월 27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