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를 보지 말고 메시지를 보라.”
이 말은 함께 사는 사회, 특히 직장에서는 꼭 기억해야 할 말입니다. 대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어떤 메시지에 메신저의 의도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거를 곱씹다가 자기 생각의 덫에 빠집니다. ‘해충단판’을 하지 말라는 말은 참 적절한 표현입니다. 해석하지 말고, 충고하지 말고, 단정짓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 입니다.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른 동료들은 다들 집에 가는데 팀장이 ‘당신만 남으세요’하면 그냥 ‘남아 있으라’는 그 메시지만 담아야 합니다. 여기에 온갖 상상을 붙여 ‘어쩌구’ 또는 ‘저쩌구’하는 것은 다 부질없습니다. 설령 그 팀장이 전사에서 악질로 소문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개별 상황은 개별 상황입니다. 악질 팀장이라고 항상 매순간 악질인 것은 아납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행위는 사람 사이 또는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고 이 때 잘함도 생기고 잘못도 생깁니다. 잘못은 혼자 있을 때는 지어지지 않습니다. 잘함도 혼자 있을 때는 지어지지 않습니다. 잘함이든 잘못이든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벤트입니다.
이것이 잘함이다 이것이 잘못이다는 판단은 행위 자체로만 판단하면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행위는 그 행위가 발생한 맥락을 갖고 있습니다. 맥락으로 인해 발생한 행위는 그 사람의 의도와는 무관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이 특수한 맥락에서는 그런 일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잘못은 잘못이더라도 그를 비난할 상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많이 만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을 통해 상황의 맥락을 잘못한 사람이 말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남의 말은 남의 말일 뿐입니다. 전달한 사람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합니다. 그게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실은 객관적이지 않으며 진실은 숨겨져 있고 드러나는 부분만으로 구성될 뿐입니다. 순수한 의도도 때로는 특수한 맥락에서는 잘못된 의도로 판단됩니다.
직장생활은 민감한 사람보다는 둔감한 사람이 잘 합니다. 감정의 부딪힘이 많은 곳에서 부딪힘을 늦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있다면, 대개는 주위에 나쁜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하고 또 나쁘기 때문에 그게 이유일 수 없습니다. 무의식에서 빛의 속도로 올라오는 ‘해충단판’, 즉 ‘자동판단’이 원인입니다. 자동판단은 무의식에서 올라옵니다. 대개는 성공을 향한 강박감이거나 피해의식이 누적된 자기인식의 결과입니다. ‘피해의식’이 깊게 박힌 사람은 그 ‘피해의식’을 빼내기가 돌에 박힌 쇠말뚝 빼내기보다 어렵습니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은 자기를 닮은 직장 상사 ‘박동훈’을 만납니다. 이 드라마에는 울림이 큰 명대사가 많은데, 그 중 ‘박동훈’이 이렇게 대사 치는 장면은 걸작입니다.
(박동훈)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들을 알기가, 겁난다.”
(이지안) “개새끼.”
누군가의 “개새끼”가 되어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힘겨운 청춘들에게 바치는 OST. 손디아 (Sondia) - 어른 (Grown Ups) MV
2019년 3월 25일 독서통신
https://youtu.be/5a-tqIQc8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