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보고서

by 송창록

징비록은 지금으로 말하면 Look-Back Report입니다. 성공한 사건을 기록한 성공 리포트가 아니라 실패에서 살아남은 실패 리포트입니다. 개별 전투에서 실패는 병가지상사이지만, 전쟁에서 실패란 국가의 멸망입니다. 징비록은 멸망 직전에 이르도록 처참했던 국가 운영 실패 보고서입니다. 이런 실패 보고서를 책임자의 관점으로 작성한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많은 유니콘이 나오지만, 그보다 수백배 더 많은 회사가 실패하여 사라집니다. 실패한 사람이 또 도전하다가 실패하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퇴장합니다. 다음에 실패하지 않을 것 같지만, 다른 이유로 또 실패합니다. 성공은 모든 실패할 가능성을 피해간 극히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기적은 단 한 번의 우연한 성공이 모든 실패 가능성을 물리친 우주적 사건입니다. 기적의 대명사가 바로 사랑에 빠지는 일입니다. (이거 뽕맞은겨! 제정신이면 절대로 못하는겨!)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과학을 믿습니까?” 순간 얼떨결에 ‘믿습니다!’라고 답한 사람이 있을 겁니다. ㅎㅎ. 과학은 ‘믿음’의 영토에 있지 않고, ‘의심’의 영토에 있습니다. “믿지 않습니다”가 옳습니다. 과학은 세계를 의심하는 방법입니다. 관찰을 통해 가설을 세운 후 실험을 통해 검증하고 검증한 결과를 통해 다른 의심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입니다. 검증의 방법 중 반증이 있습니다. 반증 불가능할 때 하나의 가설이 과학적 진리로 ‘인정’받습니다. 만약 ‘믿음’의 영역이었다면 ‘믿음’과 동시에 진리는 완결입니다.


성공 사례는 ‘반증’ 사례가 무수히 많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믿음’의 영토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실패는 ‘의심’을 일으켜 성공한 ‘반증’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성공 사례를 학습할 것이 아니라 실패 사례를 학습해야 합니다. 인간은 비합리적이라서 실패 사례를 거의 축적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자서전입니다.


그렇다고 ‘믿음’과 ‘의심’이 따로 노는 것은 아닙니다. ‘의심’은 어떤 결정 이전에 현실의 조건과 한계를 분석하고 파악하는데 기여합니다. 하지만 결정의 순간,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변곡점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딜리버리하는 도구가 바로 ‘메신저’입니다. ‘메신저’를 향한 신뢰가 있어야만, 설득됨으로써 ‘행동’이 일어납니다. 의심은 ‘이성’의 영토이고, 믿음은 ‘감성’의 영토입니다. 인간은 이성으로 판단하고 감성으로 결정합니다.


성공하는 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합니다. “타인의 실패와 자신의 성공에서 배우라.” Small Success를 경험한 중간 관리자가 큰 관리자가 되고 싶다면 ‘타인의 실패 사례’를 열심히 배워야 합니다. 성공사례의 벤치마킹은 ‘Copy Cat’이지만, 실패사례의 벤치마킹은 ‘Divergence’입니다.


징비록은 오늘날에도 무한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실패보고서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5월 22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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