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공감

by 송창록

불행을 제거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듯이 불만을 제거한다고 해서 만족해지지 않습니다. 불X는 모두 X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불X는 X가 있어야만 존재하는 종속개념입니다. X가 내 영역에 있으면, 반작용인 불X가 인식되지 않습니다. X가 내 영역 바깥에 있으면, 그제서야 반작용인 불X가 비교에 의해 인식됩니다. 불X의 근본 원인은 바깥에 있기 때문에 해결책이 없습니다. 굳이 해결하려면, 땅을 산 사촌을 망하게 해야 합니다. 내가 땅을 살 돈은 없기 때문입니다.


불X는 결핍의 감정이고 Needs를 낳습니다. 대부분의 VoC는 결핍의 토로입니다. ‘비효율에 숙달’되면 비효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개선만 합니다. 우물을 파면 될 일인데, 물 나르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개선만 합니다.


X는 욕구의 감정이고 Wants를 낳습니다. 자기가 뭘 욕망하고 있는지는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Intangible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Tangible을 발견하면, 그제서아 ‘아,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거였어’라고 압니다.


불X는 표면의식의 작용으로 Tangible합니다. X는 무의식의 작용으로 Intangible합니다. Design은 Intangible을 Tangible로 전환하는 작업입니다. 근본적으로 Design은 Innovation 그 자체입니다.


Needs는 이해의 과정이지만, Wants는 공감의 과정입니다. 공감은 관찰로부터 나옵니다. 공감은 인식 활동이 아니라 감각 활동입니다. 혁신을 하려면 관찰의 기록인 Data에 대한 이해와 심리학, 사회학 등 인간에 대한 이해가 도킹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대부분의 결과물은 Frame에 걸려서 비효율의 극단을 달리는 User로부터 취합된 VoC에 의존합니다. VoC는 Function의 결핍이기 때문에 기능의 추가로 결론납니다. 증가한 복잡성은 새로운 결핍을 잉태합니다. 밑바닥의 욕망은 사실 쓸데 없는 것을 없애달라는 건데 말입니다.


‘내게 필요한 것 말고 내가 원하는 걸 주세요.’ 사랑에 빠진 남자의 뇌를 유아 단계로 새하얗게 되돌려놓는 여자의 이런 요청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말만 하면 다 해줄 수 있다고 했는데도 여자는 그런 말은 안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마케팅에서는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겁니다. 자기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봐 달라는 겁니다. 관찰하고 공감하여 자기가 원하는 걸 발견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을 고객을 구성원을 이렇게 바라보고 관찰하고 있나요?

2019년 7월 17일 사람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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