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객관화

by 송창록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오래된 뇌활동입니다. 여섯 가지 보편적 감정이 있습니다. 기쁨, 슬픔, 공포, 분노, 혐오, 놀람. 이 중에 기쁨을 제외하고는 대개 부정적인 감정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외부 환경의 변화와 위협에 대응하려면 먼저 자극에 반응해야 합니다. 신체의 반응과 함께 뇌에서도 반응 신호를 받아 호르몬에 변화가 생깁니다. 호르몬 변화가 곧 감정입니다. 모든 감정은 본래부터 존재하는 생명활동입니다. 여섯 가지 감정은 좋고 나쁘고를 따지면 안됩니다. 감정의 표현 정도도 저마다 생명활동이라 다 다릅니다.


감정이 발생한 후에 이를 어떤 ‘행위’로 전환하는가가 중요한 Point입니다. 인간의 감정이 어떤 행위로 전환될 때, 두 가지 경로를 보통 따릅니다. 하나는 즉각적인 반사적인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축적된 지식과 지혜를 활용한 대응입니다. 인간은 이 두 가지 경로를 모두 사용합니다. 느닷없이 여자에게 싸대기를 맞아본 남자는 반사적인 반응을 겪은 겁니다. 그러려니 해야 하는데, 그거 따지고 들면 큰 싸움 납니다.


분노를 다스리라는 말, 특히 감정을 다스리라는 말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감정이 Trigger가 되어서 규모가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즉각적인 반사 반응을 이성 반응으로 확대 해석하여 죽기살기로 대응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두번째 화살’을 맞지 말아야 합니다. 첫번째 화살은 감정이 일어나는 걸 말합니다. 두번째 화살은 그 감정을 붙잡아서 스스로 고통에 빠지는 걸 말합니다. 첫번째 화살은 생명활동이지만, 두번째 화살은 스스로 선택한 겁니다. 두번째 화살에 사로 잡히면 감정의 전이가 일어납니다. 공포에서 분노로, 놀람에서 분노로, 등등. 불길에 휩싸이면, 감정을 일으킨 본래의 생명인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내몹니다.


감정이 발생하면, 그 감정의 실체를 인지해야 합니다. “아,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하고 알아채는 과정입니다. 화가 난 행위를 한 상대방에게 지금 자기가 화가 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이 알고서 바로 사과를 하면 바로 화해하면 되지만, 상대방이 모르면 잠시 멈추고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발생한 감정을 객관화합니다. 이럴 때 다이어리나 메모에 방금 화가 난 상황과 자신의 감정을 기록해 두면 좋습니다. 나중에 이 때의 상황과 감정을 대상으로 놓고 이에 대해 되짚어 보는 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수행입니다.


감정은 좋고 나쁨이 없는 성장 동력입니다. 억누르지 않고 다스리며, 숨기지 말고 객관화합니다. 감정 객관화는 스스로 기록하거나 말로 밝힘으로써 대화와 토론을 거쳐 사고와 행위를 성숙하게 하는 수행입니다

2019년 12월 10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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